인생 제 n막 개시, 토익 점수를 따자!
나는 백수 생활이 처음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았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휴학을 길게 하기도 했고,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회사 내정을 받았기 때문에 어디든 소속되어 있었다.
2024년 8월, 일본 회사의 모든 동료와 상사들에게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다.
"저, 서울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할 거예요!"
... 그러니, 응원해 준 그들에게 미안하거나,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뭐든 성공시켜야 했다.
편입을 하겠다고 그만둔 회사지만, 9월부터 준비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소 6개월, 일반적으로는 1년을 잡고 준비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성공 수기들을 봐도 그 기간 동안 학원과 인강 커리큘럼을 차근차근 밟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우선 만료된 토익 점수를 갱신하기로 했다.
취업을 하든, 편입을 하든 토익 점수가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익으로만 갈 수 있는 학교도 있고!
8월 말에 귀국해 9월 중 2주 동안은 토익 공부에 몰두했다. 2년 전 925점을 취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만점(990점)이 목표였다.
일단 만점을 받으면 뭐든 되겠지 싶어 열심히 모의고사를 풀었다.
이후에는 국가시험을 준비해 면허를 따서 취업부터 하고 편입 영어를 1년 간 공부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토익과 국가시험 공부를 병행하던 9월의 어느 날!
원래는 내년부터 공부하려 했던 편입 영어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아
기출문제가 담긴 편입 교재를 용기 내어 한번 펼쳐 봤다.
어라, 막상 보니 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선 지금은 토익과 국가시험에 집중하고
편입도 지원은 해봐도 되겠거니 싶었다.
모든 학교에 다 떨어지더라도 원래 계획한 대로 취업하고, 1년 동안 편입 준비를 병행하면 되었다.
그렇게 2주 간의 혹독한 토익 모의고사 풀기가 시작되었다!
대학 다닐 때 산 회색 스톱워치를 함께 올려두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땅! 을 외친 뒤 시작 버튼을 누른다. 누르기까지 꽤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 끝까지 끌어올린 집중력을 오랜 시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공부 스타일은 '무조건 문제 많이 풀기'다.
정말 문제만 냅다 많이 푼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고백하자면, 나는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변태(?) 같을 정도로 말이다. 틀리면 더 좋아한다(!).
앗싸, 분석할 게 하나 더 생겼어!
그래서 독학이 나와 잘 맞는 건지 모르겠다. 영어 사교육도 중학생 때가 마지막. 나만의 페이스로 탐구하면서 실력을 늘리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암기하고, 모르는 문법은 인터넷에 검색한다. 같은 개념도 익숙해질 때까지 보는 편이다.
그렇게 토익 문제와 연애를 하는 이상한 사람은
2주 동안 대략 20회분을 풀어냈다.
하루에 평균 1-2회분을 친 셈이다.
문제집은 시중에 파는 ETS 1000제 2와 3, 해커스 토익 실전 모의고사.
ETS 1000제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았다. 점수 매겨보면 평균 800점대였다. 만점을 목표로 한 내게는 턱없이 모자란 점수였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오가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토익 시험 당일.
전날 13시간이나 공부한 탓에 잠을 4시간도 못 자고 왔다.
전쟁을 앞둔 병사의 각오 서린 마음가짐으로 입실했으나
가장 쉬운 리스닝 파트 1에서 답을 못 쓸 정도로 손을 덜덜 떨었다.
발표하기 직전과 다르지 않게 높은 긴장도. 너무 완벽하게 임하려고 한 것이 원인이었다.
설상가상 끝나기 5분 전에 파트 5에서 4문제나 급히 고쳤고, '뒤에는 얼마나 틀린 게 많을까'라고 좌절하며 시험장을 나섰다.
나는 만점을 바랐기 때문에 하나라도 틀리면 안 돼!라고 생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시험 당일보다 더 긴장하면서 확인한 결과는
960점이었다!
최고점을 갱신했지만, 토익 편입판에서는 그렇게 높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편입 준비생들에게 흔한 975점, 985점 그리고 만점인 990점 사이에도 각각 큰 벽이 있기 때문이다.
만점을 향해 GO 할 것이냐, STOP 할 것이냐 고민했다.
그래도 2년 만에 친 토익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국가시험과 편입 영어를 준비해야 하니 더 이상 토익만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백수의 새로운 수험생활이 또다시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