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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시험이라니

2025학년도 편입 시험 후기에 음식을 많이 곁들인

by 감은 홍시가 된다




영하 14도에 시험 치러 나간 사람






내가 지원한 학교는 총 9곳이다. 한 곳은 토익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니 총 8곳에 필기시험을 치러 가면 되었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제 여러 우물을 팔 형편은 못되었다. 그러므로 경쟁률, 눈치 싸움 이런 거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학교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진로와 연관된 '학과'에 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야말로 소신지원. 그리고 학교는 서울 안에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서울은 기회가 많으니까!


남들이 1년씩 학원 다니며 준비한다는 편입 시험을 달랑 3개월 혼자 공부했다. 아무리 편입이지만 서울 안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는 인기 대학에 들어갈 욕심을 어떻게 부리겠는가.


그렇게 지방 사람의 서울 여정은 시작되었다.






서울을 오간 KTX 안



첫 시험은 12월 15일, 마지막 시험은 1월 12일이었다.

내일로 티켓을 끊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총 3번 왕복했고, 서울에서의 숙식은 감사하게도 내 혈육의 작고 소중한 원룸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서 둘이 생활한다 하면 다들 믿을 수 없다고 하겠지만, 고시원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그저 무한 감사일 뿐이었다.

나는 방 주인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 구석 바닥에 찌그러진 채 막판 공부를 이어나갔다.






첫 시험은 최악이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탈 날까 아무것도 못 먹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복 시험에 임했다.

시험 30분 전부터 배고픔으로 인한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영어 지문이 일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다 찍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그 다음 날 치러 간 학교에서는 급히 편의점을 찾아 블루베리 잼이 든 샌드위치 하나를 든든히 먹었다. 덕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입실했다. 하지만 '확틀(확실히 틀린 문제)'이 너무 많이 나와버렸다. 급한 마음에 실수도 했다. 역시 편입의 벽은 높았던 걸까. 퇴실하는데 좌절감이 발걸음마다 채이는 듯했다.



가장 캠퍼스가 아름다워 감동에 감동을 했던 학교



유일하게 시험지 반출이 가능했던 학교



하지만 놀랍게도 위의 세 학교 모두 1차(필기)를 통과했다. 얼떨떨했다. 1차는 TO의 5배수(혹은 7배수, 10배수) 정도 미리 선발하는 것을 말한다.


1차를 통과했으니 학업계획서를 쓸 기회를 얻은 셈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데다, 시험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시간을 내어 써야 하니 참으로 부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과에서 문과로 지원하는 완전 무경험 비동일계 지원자라 학업계획서에 있어 더욱 불리했다.


그래도 써야지, 어떡해.


다른 학교 시험 전 3일 동안 학업계획서에만 시간을 모조리 투자했다.

이제 영어 공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업계획서 문항 中



전공적합성 따위 없다... ^^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어찌어찌 썼다. 지원 전공과 졸업한 전공이 완전히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 데만 며칠 머리를 싸맸다.






이어지는 시험...



캠퍼스 구경하려고 지원한 학교



이곳은 들은 대로 유럽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원하는 전공은 없었지만 일정이 붙어있어 서울 간 김에, 사실 캠퍼스 구경하려고 치고 왔다.





여기는 가장 이른 시간에 시험을 쳤던 학교.

지하철 내렸는데도 동이 트지 않아서 정말 밤인 줄 알았다.


시험 끝나고 건물을 빠져나오니 아주 훤했다



제대로 푼 게 한 문제도 없었다.


시험은 제일 망쳤지만 죽기 전에는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아련한 생각을 하며 강의실을 나섰다.


동시에 가장 콘셉트가 강력한 학교라 생각한 게

학교에서 나눠주는 핫팩마저 디자인이 심상치 않았다.




콘셉트 확실한 핫팩






지금부터는 시험 보러 다니면서 위장에 넣은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별로 중요하진 않다.


앞서 말하자면 나는 살면서 배달 음식을 먹는 게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여럿이 먹는 치킨은 논외)

괜히 비싸기도 하고, 내 입맛을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직접 요리해 먹는 게 제일 맛있고, 이왕이면 식당에 가서 먹는 게 깔끔하고 맛도 더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육은 이미 배달 어플 VVIP는 된 듯 자연스럽게 "뭐 시킬래?" 물었고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라는 심보로 "오, 사주는 거야? 그럼 땡큐지." 했다.

덕분에 한 해 먹을 배달 음식을 시험기간에 다 얻어먹을 수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순삭했다


내 기준 초호화 식사


자리가 없으니 나는 이부자리에 공부하던 베드테이블 그대로 책만 치우고 배달 용기를 얹었다.


나에게 배달 음식은 카인드 오브 사치에 속한다.

사치를 먹으면서 "에휴, 이렇게 맛있는 걸 얻어먹는데 시험은 망칠 거야... 에휴..."

한풀루언서(한숨 푹푹 쉬어대며 주위를 가라앉게 하는 사람)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어이, 못 쳐도 되니까 그냥 후회만 없이 치고 오라고~






물론 배달 음식만 먹은 건 아니다.

식자재 불모지인 이 원룸에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식량을 조달해 주셨다. feat 우체국택배.

덕분에 고구마, 양파, 대파, 김치 등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혈육은 기본적인 식재료도 없이 살고 있었다.

(그는 대체 뭘 먹고사는 걸까...)



고구마 앤 김치. 직접 만든 간짜장.






혼자 편입 준비할 때 또 주의해야 할 점은, 학교마다 요구하는 점이 너무 다르다는 거다.

서류의 종류, 서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제출 방법과 시기 등.

공부만으로도 벅차 정신이 없겠지만, 모집요강만큼은 학교별로 꼼꼼히 읽고 메모하기를 추천한다.

정말 다르다. 누가 통일 좀 시켜주십사...


한 번은 정말 우연히! '독편사'라는 네이버 카페를 방문했다가

모 대학은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은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끝이므로...)

심지어 서류 제출 기간이었다.


하마터면 서류 미비로 허무하게 떨어질 뻔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1단계 합격자 대상 서류 제출



그 뒤로 네이버 카페 방문 중독이 되었다는 후문...






또한 나는 치즈김밥 중독자다.

시험 치기 전 끼니로 무조건 치즈김밥을 먹으러 갔다.



한 줄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만 같다



살짝 물려도 자고 일어나면 또 먹고 싶어지는 마성의 치즈김밥.





이 대학은 오후 시험이었다. 일찍 도착해 버린 나머지 학교 앞 카페에 들러 유자 캐모마일 티를 마셨다. 카페 안 모두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일단 보고는 있었지만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매콤한 쌀국수와 미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



첫 시험 끝난 직후 얻어먹은 것들.

먼 지방에서 왔다고 신기한 서울 문물들을 소개받았다.

오른쪽 사진의 슈가파우더 축제 열린 빵은 '베녜(Beignet)'라는 디저트다.

슈가파우더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접시를 통째로 들어 슈가파우더를 입가에 묻혀가며 흡입했고

맞은편에 앉은 혈육이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감내해야만 했다.

아무튼, 꼭 먹어보길 바란다.



최고의 편의점 조합


너무 배가 고파서 먹은 김치볶음참치마요 삼각김밥 하나와 후랑크 핫바.


실감모의고사라는 시험지는 다들 사길래 나도 사봤다. 김땡편입 사이트에서 판매한다. 한 부당 3만 원.

샀는데 기출문제만 봐도 시간이 모자라서 제대로 안 보고 어휘 문제만 암기했다.






여러 글들이 배달시켜 먹은 짬뽕처럼 이것저것 뒤죽박죽 섞인 글이 되어 버렸지만

정신없이 지낸 시험기간이 그대로 투영되긴 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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