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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환복



작업복을 벗는다

기름 냄새가 아직 어깨에 스며 있고

목덜미엔 탄광의 어둠이 아직 눌어붙어 있다


하얀 셔츠를 입기 전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무언가를 벗지 않으면

아무것도 입을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마음에도 옷이 있을까?

말끝에 남은 거친 먼지

행동에 눌린 오래된 자국

무심한 눈빛 속에 뒤틀린 주름들까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제는 이 옷을 버리려 한다

벗어내는 일은 견디는 일과도 닮아있다

고요한 빛 속에 서서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그 빛은 따뜻하지 않았다

차갑고, 얇고, 그리고...

살을 파고드는 속도로 나를 감싸 안았다


잊고 싶은 말들이

피부 안에서 조용히 타오른다

조금은 아팠고

끝내 오래 걸렸다


그때 나는 알았다

양심은

근육처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고통이 반복될수록

그 근육은 스스로 단단해진다는 걸


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작업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살기로 다짐한다


삶도

이 한 벌의 옷처럼

매일 갈아입어야 하니까...


달빛 아래

나는 나를

조금 더 단단히

여민다


내 양심의 소리가

들려온다


내 심장이 다시

두근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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