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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Dec 27. 2021

드로잉-청소기

"주현아! 방 청소 좀 해라"

할머니의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목소리.

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었다. 방 넓은 면은 쓱쓱,  모서리진 곳은 빗자루의 날을 세워서 섬세하게, 장식장 다리 밑으로 최대한 빗자루를 깊숙이 집어넣어 구석구석 방안의 먼지들을 쓸어 모았다.

먼지가 코를 간지럽히고, 온 방에 먼지들이 날아다녀도 그것이 청소의 정석이었고, 최선이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진공청소기는 정말 고마운 물건이다.

웬만한 것에 갖다 대기만 하면 코끼리 코로 음식물을 받아먹는 것처럼 쑥 빨아들이니 말이다.

먼지를 먹을 일도 적고, 쓰레받기를 동반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어서 청소가 한결 편하고 쉬운 일이 되었다.




"무선 청소기 써봐, 완전 신세계야!"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도 간사한 것인가.

그토록 편리함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우리집 청소기가 왜 이리 무능하게만 느껴지는지.

청소기 본체에 붙어있는 전선이 그날따라 거추장스럽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스토커 같았다.



아직 나는 전부터 쓰던 유선 진공청소기를 쓰고 있다.

전선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게 되는 어느 날, 무선 청소기든 로봇청소기로 바꾸겠지? 또 다른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나는 예전의 물건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점점 더 큰 편리함을 찾겠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렇게 하나하나 물러나는 것들에 애잔함이 느껴졌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보면

'무선청소기였다면 쓱싹 편했겠다.' 란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나의 이중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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