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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Oct 03. 2022

조종사의 위기탈출 1/3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작고하신 정주영 회장님의 자서전 제목이다.

조종사는 발생할 확률이 낮은 시련을 만들어 훈련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다.


가끔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다. 정말 끔찍한 일인데 더 한 꿈이 있다. 특이한 상황에서 비행기 조종을 하는 꿈이다. 분명히 랜딩기어를 내리고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활주로에 닿기 직전에 보니 랜딩기어가 내려가 있지 않은 황당한 시추에이션 등이 그렇다. 재 입대하는 꿈을 꾸는 것만큼 해괴한 상황에서 비행하는 꿈을 꾸곤 한다.  



평범하지 않은 비행

미리 정해진 순항 고도에 도달하자 비행기가 스스로 고개를 낮추며 수평 비행에 들어갔다. 기장인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회색 계열로 포개져 있는 구름 사이에서 태양을 품은 오렌지 색이 빛샘처럼 번지고 있었다.

기류가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높이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부기장에게 안전벨트(Seat belt sign) 스위치를 끄도록 지시했다.


비행기 조종실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스위치들. 과연 조종사들은 모든 기능을 잘 알고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대개 머리 위에 모여 있어 오버헤드 패널(Overhead pannel)이라고 부른다.


부기장은 나의 행동을 복사라도 하듯 앞 쪽 창밖을 주시하며 안정된 기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위를 힐끔 보고는 익숙한 듯 왼손으로 위치를 찾아내어 조심스레 기내의 안전벨트 표시를 껐다.


누군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을 때, '띵!' 하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 위의 안전벨트 불빛이 꺼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주위 관찰력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무원의 방송을 듣고 나서야 차임벨(Chime bell)이라고 하는 이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다. 필요하면 화장실을 가도 되지만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여전히 안전벨트를 메라는 내용이다. 비행기의 앞 쪽에 앉은 경험이 있던 사람이라면 어떤 승무원이 차임벨 소리에 조건 반사하듯 방송용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며 기내 방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대본을 보면서 읽지만 너무 자주 하는 방송이라 이미 외운 듯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방송을 이어갈 승무원을 상상해본다.  


비행 단계가 순항으로 접어들면 조종실에도 뭔가 느슨함이 생긴다. 언젠가는 양 쪽 팔걸이에 팔을 올린 후 엉덩이를 의자에서 살짝 앞으로 밀며 여유로운 앉은 자세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부기장이 바스락 거리며 비행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건네 준 적이 있었다. 커피였다. 순식간에 조종실을 에어 카페(Air Cafe)로 바꾸는 마술이었다. 


여유로움도 잠시, 갑자기 오버헤드 패널 중 '여압장치(PACK)'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불빛이 들어왔다. 비행기 안에 공기를 지속해서 넣어주는 장치인데 우리에게는 각각의 엔진에 한 개씩 모두 두 개가 있다. 계기판은 두 개 모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차임벨 소리에 승무원이 조건반사로 방송용 수화기를 들었듯 우리도 즉시 앉은 자세를 고쳐 세우며 긴장했다. 조종사들은 이 상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안다.


비행 고도는 비행기가 지면으로부터 어느 정도 높은 거리에 있는지를 정의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달리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航路)는 3차원이다.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앞·뒤 간격도 유지해야 하지만 위·아래 사이도 적정 거리를 유지해 줘야 한다. 

땅은 평야와 산으로 구성되어 높낮이가 생긴다. 같은 높이를 비행하고 있더라도 평야 위를 비행할 때와 높은 산맥 위를 비행할 때 지면으로부터의 고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비행기가 어느 고도 이상 올라가면, 해수면인 수준원점(水準原點)으로부터의 고도로 계산한다. 이를 해발고도(海拔高度, MSL, Mean Sea Level)라고 한다. 고도를 정하는 기준이 같아야 "나는 3,000m로 날고 있어", "그래 나는 3,900m로 날아서 네 옆을 지나갈게"라며 서로 다른 고도로 비행하게 되고,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점점 낮아진다. 예를 들어 해발 11km에서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의 어느 게이트에서 줄 서있을 때에 비해 기압이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공기도 25%에 불과하다. 이는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높은 고도에서 순항 중인 비행기는 여압장치라는 것을 이용해 안에 타고 있는 승객이 편하게 영화 볼 수 있는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우리의 순항 고도는 해발 8,400m였다. 대략 네팔과 중국으로 이어진 마칼루 산(8,465m)의 높이다. 여압장치는 외부의 실제 기압에도 불구하고 내부 기압을 마치 우리가 1,500m에 있는 정도로 유지해 주고 있었는데, 이는 오대산이나 태백산 정상에서 '야호'를 부르며 느낄 수 있는 기압과 같다.


여압장치가 둘 중 하나만 정상이어도 보통의 상태를 잘 유지해주는데 두 개 모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를 받았으므로 곧, 우리의 신체가 한라산(1,947m)을 넘어 오늘 처음 들어봤을 마칼루 산에 맨몸으로 도달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것이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 상황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알게 됐다.



문제를 대처하는 조종사의 방법

갑자기 발생한 여압장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3,000m로 즉시 비상 강하(Emergency descent)를 해야 했다. 전문 산악인들이 착용하는 보조 장비 없이 사람들이 견뎌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도다.  

여압장치는 온도 조절 기능을 함께 한다. 엔진으로부터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의 온도를 낮추느라 과부하가 걸렸을 수도 있으므로 부기장에게 기내 온도를 올리고 리셋 버튼을 눌러보라고 지시했다(Trip reset swich push). 계기부기장 머리 위에 있다.

다행히 둘 중 하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만 정상이어도 목적지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나는 왼쪽 창가에 부착돼 있는 아이패드를 고정대로부터 떼내어 들고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 절차를 알려주는 체크리스트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 비행은 부기장이 조종 업무(PF, Pilot flying)를 하고, 나는 부기장의 조종 업무를 모니터 하면서 관제사와 교신하는 역할(PM, Pilot mornitoring)로 임무 분담을 하는 중이었다. 부기장이 조종 업무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아이패드 화면에 체크리스트를 보이도록 하고는 부기장과의 사이에 놓으며 읽기 시작했다. 절차대로 몇 가지 스위치들을 껐다가 켜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서둘러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쉬운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체크리스트는 QRH(Quick Reference Handbook)라고 부른다. 단지, 해당되는 제목을 찾아가 순서대로 읽으며 지시대로 뭔가 작업을 하면 된다.


너무나도 쉬운 일이 아닌가!


이 쉬운 일을 당황해서 실제 발생한 일과 다른 체크리스트를 적용하거나, 여러 절차 중 한 가지라도 빼먹는 일이 생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조종사는 QRH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운다.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는 사용 길잡이가 있다.  


체크리스트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기내가 어두워지고 비행기가 정전되었다. 밖이 환했지만 각종 패널과 스위치의 불빛들이 꺼질 때 내부 밝기가 확연히 어두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엔진 두 개가 모두 꺼진 것을 알게 됐다.


난데없이 부기장이 "You have control!"이라고 외쳤다. 본인이 하던 비행기 조작 임무를 나에게 넘기고 보조 역할로 빠지겠다는 뜻이었다.


헐~  ̄Д ̄;


진심이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기장인 내가 비행기를 조작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내면이 '너 뭐야~'하는 혼잣말을 입 밖으로 뱉을 뻔하게 만들었다.


"I have control, you have radio."


내가 조종 권한을 받고 너는 관제사와 통신 업무를 맡는다는 대꾸를 했다. 콜아웃(Callout)한다고 하는데 업무 지정을 명확히 하는 절차다.


두 개의 엔진이 모두 꺼진 급박한 상황이지만 잠시 여유를 가져 보자.

회사가 만든 교범은 내가 갖고 있는 조종 업무를 상대방에게 주는 절차(Control Transferring)를 3단계로 나누어 정하고 있다.


the PF must call "You have control"

the PM will respond "I have control" after the actions has been taken

the PF must recall "You have control"


PF는 반드시 "네가 조작해"라고 한다.

PM은 조작 행위를 넘겨받은 후, "내가 조작해"라고 한다.

PF는 반드시 "네가 조작해"라고 다시 얘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must라는 영어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말하는 사람이 A라고 말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A'(A와 유사)라고 말하는 오류다. 둘째는 듣는 사람 입장이다. 말하는 사람이 A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A' 또는 B라고 말했다고 받아들이는 오류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므로 애매한 화법은 설명과 이해 사이에서 대화의 오류를 만들기 쉽다. 어떤 대화들은 명확하게 표현해줘야 한다.  

초등학생이 교실에서 지켜야 할 지침 같아 보이는 이 내용이 무려 교범에 들어가 있는데 조종사가 따라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 조종사들이 명확하게 대화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황해서 동시에 비행기를 조작하거나 둘 다 하지 않 일이 있었다고 한다.


QRH의 기본은 절차의 순서를 바꾸거나 한 가지라도 누락하지 않도록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몇 가지 항목은 QRH를 읽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따라서, 반드시 외우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메모리 아이템(Memory item, 기억해야 하는 항목)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가 이에 해당될까? 당연히 매우 급박한 상황이다.

하늘 위에서 두 개의 여압장치가 함께 고장 나면 치명적인 이유를 여러분께 설명했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공중에 있는데 갖고 있는 엔진 두 개가 동시에 꺼졌다. 어떤 상황인지 굳이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가?


다시 비행기로 돌아왔다.

나는 즉시 "메모리 아이템!"이라고 외쳤다. 이 한마디로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조치를 시작했다.

부기장은 엔진 시동 점화플러그 두 개가 연속적으로 불꽃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 엔진 시동 스위치(Engine start switch)를 플라이트(Flight)로 돌렸다. 그러고는 시동 레버(Engine start lever)를 내렸다가 엔진 온도 등을 확인 후에 다시 올렸다.


시동 스위치, 시동 레버... 우리에게도 복잡하다. 스위치는 점화플러그, 레버는 연료 공급에 좀 더 주안점을 둔 장치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시동 스위치를 OFF에 두어도 엔진은 작동하지만 레버를 내리면 엔진은 꺼진다. 이해를 잘 한 분이 있다면 나보다 더 조종사에 자질이 있다고 인정해 드릴 테니 꿈을 키우시길 바란다. 다만, 이미 나이가 많으시다면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꺼졌을 때, ①점화플러그를 연속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고, ②혹시라도 엔진이 다시 켜지도록 시동을 껐다가 켜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도록 돼 있는 것이 메모리 아이템의 요지다.

세 번 정도 껐다가 켜봤는데도 엔진이 살아나지 않았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두 발 자전거 타기를 가르친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에는 뒤에서 자전거를 손으로 잡아준다. 이내,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데, 어느 속도 이상이 유지되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어."라고 말하며 손을 놓고는 비틀비틀 가는 모습에 웃을 것이다. 

비행기도 이와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 일정 속도를 유지하면 엔진의 힘 없이도 추락하지 않고 비행할 수 있다. 글라이딩(Gliding)한다고 한다. 70톤의 비행기가 종이비행기처럼 글라이딩하려면 종이비행기가 날고 있을 때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우리가 비행 중인 곳은 산악 지역이었다. 같은 해발고도라도 지면이 평야보다 높기 때문에 실제 고도는 더 낮다. 이미 고도에 대한 손해를 보는 중이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비행을 해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도가 천천히 내려가도록 하고 있었는데, 대신에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속도 에너지를 위치 에너지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 조작을 하면서 부기장에게는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시켰다. 근처 한중(汉中)이라는 도시에 쳉구공항(城固机场)이 있었다.

처음에 우리가 이륙했던 시안(西安)에서 자동차 도로로 3시간 40분간 260km를 운전해 가면, 인구 370만 명의 도시 한중이 나온다. 1,300만 명의 시안에 비해 작은 도시지만 한 때는 중국 한나라 지방의 중심지였다. 지형이 험난했던 점을 이용해 유방이 항우를 피해 힘을 모으며 재정비했고, 삼국 시대 때는 황충이 위나라와 전쟁하러 갈 때, 20만 군대를 거느린 하후연과 부딪혔던 곳이다. 219년, 조조의 친인척 장수 4인방(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중 한 명이자 한중의 총사령관이었던 하후연은 결국 이곳에서 패하고 숨을 거둔다.   

한중 공항이 근방에 있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엔진이 모두 꺼진 비행기를 수동으로 조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공항 정보를 알려주는 젭슨 차트(Jeppesen Chart)를 아이패드로 찾아보며 머릿속에 익숙하게 만들고 가야 할 상황이었다. 어떤 활주로를 이용하고 착륙 후에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아직 낯설었지만 그곳에 내리겠다고 선포했다.


부기장이 관제사에게 한중 공항으로 가겠다고 알리는 순간, 관제사가 우리 비행기의 속도를 300노트(556km/h)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다시 속도를 높이려면 저 산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쳐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관제사가 나의 오른편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나타났다.


부기장과 나는 시뮬레이터(Simulator)에서 체크를 받는 중이었고, 그는 우리를 평가하는 심사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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