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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Oct 06. 2022

조종사의 위기탈출 2/3

블랙스완

중국 항공사에서의 시뮬레이션 훈련이란

조종사들은 각종 비정상 상황에 처했을 때, 잘 해결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6개월에 한 번씩 비행기와 유사하게 만든 시뮬레이터에서 훈련 후 체크를 받아야 한다.


한편,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중국 항공사 이직'으로 검색하면,


"한국 조종사, 연봉 2~3배 높은 중국으로..."


또는

"[中인력 유출] 중국으로 이직한 韓 조종사, 다시 국내로 U턴"


과 같이 다소 상반된 제목의 뉴스를 볼 수 있다. 작성된 시기를 보면 흐름을 알 듯도 한데, 첫 번째는 2016년 기사다. 내가 지금의 회사로 오기 위해 지원했던 때도 2016년이었는데 조종사가 해외로 이직하는 붐이 일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서의 비정상 상황 문제 해결 능력은 중국 항공사들이 해외로부터 경력 조종사를 선발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다. 한국 항공사보다 훨씬 까다로운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는 응시한 조종사들을 테스트한다. 이것이 합격률을 낮춘다. 내가 지금의 중국 항공사로 옮길 때, 동시에 9명이 응시해서 3명이 합격했다.

 

'[中인력 유출] 중국으로 이직한 韓 조종사, 다시 국내로 U턴'이라는 기사는 2019년 말에 작성됐다. 조종사들이 높은 연봉을 쫓아 한창 중국으로 이직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합격한 후로도, 매번 정기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평가받는다. 여전히 까다롭다. 불합격할 경우 부기장으로 강등되거나 퇴사당하기도 한다.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불합격되어 한국으로 복귀하신 조종사들이 꽤 많다. 그렇게 복귀하시는 기장님을 옆에서 보는 상황을 포함해 이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준다.  


중국 항공사가 한국 항공사에 비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까다롭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점을 짚어보고 싶다.

이전 글에 언급한 양쪽 여압장치에 문제가 발생함과 동시에 양쪽 엔진이 꺼진 상황은 모두 매우 치명적인 사건이다. 여압장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른 처리를 하지 못하고 체크리스트를 찾아 읽고 있다가 여전히 양쪽 여압에 문제가 남아있는 상태로 엔진이 꺼지게 되면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게 된다.

두 가지가 상반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여압 문제가 발생하면 비상 강하를,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면 적정 고도를 유지하며 재시동 거는 조작을 해야 한다. 어떤 조치를 먼저 해야 할지 순간 난감해질 수 있다.  

중국 항공사의 교관들은 조종사가 어떨 때 당황하고 어떨 때 실수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유독 그런 상황을 복합적으로 준다. 한국 항공사들은 이렇게 복합적인 상황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한국 조종사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나를 포함해 중국에서 더 까다로운 훈련과 심사를 받고 있는 한국에서 온 조종사들은 비록 상대적으로 어려운 훈련이지만 결국엔 적응한다-물론 모든 상황이 시나리오 대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므로 항상 어려움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 조종사들이 비행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안 해봤던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해 하지만 또 잘 적응해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랙스완(Black Swan)

엔데믹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에 앞서, 나뜬금없이 여러분께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Singapore) 호텔로의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나(좌)와 건물 옥상 인피니티풀에서 수영 중인 내 아내(우)다


건물 세 개 위에 배를 올려놓은 모습은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쌍용건설에서 지어 2010년에 오픈한 호텔에 그 해 12월에 투숙한 적이 있다. 연속된 숫자 덕에 디럭스룸 4박 예약에 144만 원을 지불했던 일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아직은 투숙객이 많지 않았는지 체크인하는 현장에서 42층의 프리미어 룸으로 업그레이드받았던 좋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 가격비교 사이트에서는 판매하지 않았고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한데 4박에 270만 원으로 조회된다. 비싸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듯한데 나에게도 비싸다. 일찍 가보길 잘했다.


이제 여러분이 나의 추천대로 싱가포르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공항 게이트에서 탑승 대기 중에 창 밖을 보니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보인다. 조그맣게 보이는 조종실 창문 안에서 뭔가 준비하느라 분주한 듯한 조종사도 있다. 신기해 보인다.

2010년 싱가포르로 가기 위해 탑승했던 비행기

이제 다시, '뜬금없는' 질문을 해보자. 여러분은 혹시, 저 조종사들이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꺼졌을 때를 대비해 훈련을 받았는지 궁금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아예 생각을 못해봤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당연히 모든 비정상 상황에 대해 대처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평소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는 성격이 아닌 이상, 많은 분들이 미처 그런 생각까지 해 본 적 없을 것 같다.

일부 분들뿐만 아니라 조종사 중에서도 비행 중 두 개의 엔진이 모두 꺼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인 조종사 중에서도 말이다. 체크에서 우리는 양쪽 여압에 문제가 발생했다가 다시 연이어 양쪽 엔진이 꺼지는 상황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심사관이 그런 상황을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 언젠가 시뮬레이션 훈련 중 정해진 과목의 훈련을 마치고 시간이 남았을 때, 그 당시 교관(중국인)이 어떤 과목을 추가로 연습해보고 싶은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양쪽 엔진이 꺼졌을 때의 상황을 해보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교관은 "그런 일은 일어날 확률이 너무 낮아. 다른 걸 얘기해봐"라며 일축했다.  


실제로는 어떨까?

국제 민간 항공 기구인 ICAO(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는 코로나 이전인 2018년 한 해 동안 3,782만여 편의 비행기가 543억 km를 날아다녔다고 한다.

비행기 동향을 탐색해 주는 FlightAware에 따르면 10월 2일에 총 83,063편의 상업 항공사(Commercial Flights) 비행기가 어딘가로 가기 위해 이륙했다는 데이터를 표시한다. 2022년 10월 3일 오후 17시 16분 현재 6,493편의 상업 항공 비행기가 공중에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무슨 말인지 정리를 해보기 전에 우선, 8만 3천여 편이 대략 평균 두 시간여를 비행한다고 가정하자. 비행이 낮 또는 밤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점에 전 세계는 낮과 밤을 동시에 갖고 있으므로 이를 무시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다 말고 하늘을 바라본다면, 높은 확률로 대략 6,000여 편 이상의 비행기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날고 있으며, 그렇게 하루 종일 이·착륙했던 비행기가 8만 3천여 편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에 하루 평균 10만 4천여 편이 어딘가로 출발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생각보다 많은 비행기들이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다.


ICAO는 2018년 100만 편의 비행 당 2.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여러분은 혹시 식스 시그마(six sigma)라는 말을 드어본 적이 있는가? 100만 개의 제품 중 3~4개의 불량만을 허용하는 3~4PPM(Parts Per Million) 경영, 즉 품질 혁신 운동을 말한다. 2018년의 항공 사고는 식스 시그마를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다. 

2018년을 포함한 이전 5년간 '비행 중 조종 능력 상실(LOC-I, Loss of Control in-Flight)'은 총 5건에 불과했다.


그중 유일하게 알려진 양쪽 엔진이 동시에 출력을 잃어 결국 사고로 이어진 경우를 알아보자.

많은 분들이 위 이미지와 관련된 동영상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15년 2월 4일 트랜스아시아 항공 235편은 대만 타이베이 쑹산(松山) 국제공항을 출발해 진먼(金門) 공항으로 가는 중이었다. ATR 72-600이라는 프로펠러식 엔진이 달린 비행기였다. 사진은 235편이 이륙 10분 후 쑹산 공항 근처 지룽 강에 추락하기 전 인근 고가도로와 충돌하는 장면이다. 항공기에는 승객 53명과 승무원 5명 등 모두 58명이 타고 있었으며, 2월 8일 사망자 수가 40명으로 집계된 사고로 기록된다.


17세기 말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유럽인들은 하얀 백조만 보아왔다. 그들은 '백조는 당연히 하얗다'라고 생각해왔는데, 18세기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흑고니를 발견한 사실을 두고 충격에 빠졌다.

2007년, 앞으로 다가올 금융위기의 조짐을 포착했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금융위기'를, 충격에 빠졌던 과거 유럽인들이 보았던 검은 백조(흑고니)와 연상시킨다. 책의 제목을 '블랙스완(Black Swan)'으로 정하고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치명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2014년에서 2018년에 이르기까지 5년간 대략 51만여 편의 상업 항공기 비행 중, 트랜스아시아 항공 235편이 유일하게 양쪽 엔진의 추력을 잃고 사고가 났으니 확률적으로 정말 낮다. 58명의 탑승자 중 40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보자면 한 번 발생하면 매우 치명적이기도 하다.

이륙 후 양쪽 엔진이 동시에 문제가 발생할 사건이 '블랙스완'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블랙스완에 대비해 어느 정도까지 준비해야 할 것인가?'는 영원한 숙제다. 필요 자원의 증가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을 역으로 언급해 보자면, 치명적이긴 해도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다. 한국은 발생 확률이 높은 상황에 주안점을, 중국은 치명적인 극한 상황에 주안점을 두고 훈련한다고 보면 굳이 구분이 될 것 같다. 어떤 훈련이 더 나아 보이는가?


여러분이 운전 중에 앞바퀴가 이탈했다고 생각해보자. 발생할 확률은 낮지만 매우 위험한 일일 것이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 시뮬레이션 과목을 도입하고 운전 중 바퀴 또는 바퀴 축이 이탈하는 상황을 넣었다고 가정해보자. 앞바퀴가 이탈해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의 일환이다. 물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무슨 그런 것까지 시험을 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2016년 9월 14일은 추석 연휴 첫날이었다. 청량한 가을 하늘에 해가 이미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오후였다. 서울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에 "흰색 마티즈 차량이 도로에 멈춰서 있다."라는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은 순찰차를 끌고 지구대를 출발해 김포공항로를 따라 개화산역 맞은편 즈음에 도달했다. 편도 4차선 중 3차선에 멈춰 선 차가 보였고 차주(車主, 운전자)가 뒤에 서서 다가오는 차들을 우회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경찰 | 무슨 일인가요?

차주 | 운전 중 앞바퀴 축이 빠졌어요.

경찰 | 아니,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차주 | (왼손을 펴 들어 눈썹 위로 올려 햇빛을 가린다. 동시에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도로 뒤편을 멀리 가리키며) 저기 맨홀 뚜껑이 보이시나요? 주변 도로보다 조금 움푹 파여 있잖아요. 저기를 밟고 지나갈 때 차가 '덜컹' 했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멈추더라고요. 가속 페달을 밟아도 움직이지 않길래 내려서 보니 보시는 바와 같이 바퀴 축이 이탈돼 있었어요.

경찰 | 아~ 그렇네요. 다치시지는 않았습니까?

차주 | 다행히 저속에서 이탈되는 바람에 차선이탈이나 추돌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경찰 | 정말 다행입니다. 견인차를 불렀나요?

차주 | 네~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연휴라 그런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합니다.

경찰 | 알겠습니다. 저희가 당분간 비상 삼각대를 두고 교통 통제하고 있겠습니다. 운전자 분도 저 멀리 인도로 가 계세요.


나는 10년도 더 된 마티즈를 중고로 구입해 타고 다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행 중 앞바퀴 축이 이탈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워둬야 하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운전 중 바퀴 축이 이탈하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나중에 정비사 분이 바퀴 축과 연결된 로어암이라는 곳이 닳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로어암도 처음 듣는 부품 명칭이었다.


다시 운전면허에 시뮬레이션 과목이 있다는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더 나아가 어떤 심사관은 앞바퀴가 이탈되면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는 상황을 줄 수도 있다. "왜 그런 가능성 낮은 조합을 주는 거예요?"라고 따질 수 있다. 심사관은 "가능성은 낮지만 생길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의 시뮬레이션 체크가 이런 식이다.

물론, 무리해서라도 시험을 보도록 한다면, 어떻게든 합격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초기에는 불합격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분명 운전면허 학원에서 요령을 만들고 가르칠 것이다. 다만,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는 중국 항공사가 한국 항공사에 비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까다롭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시뮬레이션 훈련은 해당 과목마다 가상으로 경험해 보면서 조치해보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데 두 가지 이상의 비정상 상황을 동시에 준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2015년 2월 4일 추락한 트랜스아시아 항공 235편이 처음부터 양 쪽 엔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륙 후 2번(우측)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고 엔진의 추가 손상, 기름 유출에 의한 피해 방지 등을 위해 2번 엔진의 출력을 줄이는 조치가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기장은 어떤 착각에 의해 정상이었던 1번(좌측) 엔진의 출력을 줄이게 된다. 일시적으로 양쪽 엔진의 출력이 상실된 원인으로 비행기는 추락한다. 나중에 발견된 블랙박스에는 추락 9초 전, 기장이 정상 엔진의 출력을 낮춘 사실을 부기장에게 시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엔진 하나가 고장 났을 때의 훈련은 매 6개월에 한 번씩 반드시 한다. 트랜스아시아 항공 235편의 기장이 그다지 복합적이지 않은 단 한 과목, 한 개의 엔진이 고장 났을 때 조치를 잘 이행했다면 추락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기장이 실수하기 전까지 과정을 감안하면 2014년에서 2018년에 이르기까지 5년간 대략 51만여 편의 상업 항공기 비행 중 우연히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고장 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운전면허 시험에는 있지도 않은 비정상 상황 훈련을 비행기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게 나을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다. 어느 판단도 옳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주행 중 앞바퀴 축이 이탈했을 때, 앞서 언급한 대로 로어암이라는 곳이 닳아서 이탈됐던 것인데 수리 비용으로 10만 원을 줬었다. 앞바퀴 축이 이탈된 것 치고는 적은 비용이라 웃픈 사건으로 추억한다.

이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강조한 '블랙스완'과 같은 경험을 한 것이기도 했는데, 그 당시 나는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해서 견인 서비스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특히, 내가 운전을 잘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2km 정도 견인하는데 9만 원을 줘야 했다. 수리 비용이 10만 원인데 견인비용으로 9만 원을 지불한 것이다. 견인 서비스 보험료는 몇 천 원에 불과했다.  



왜 시뮬레이터인가?

CAE사의 737NGX 시뮬레이터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회사 중 하나인 CAE사(社)는 737 max의 대당 가격이 100억 원부터 시작한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https://www.reuters.com/article/us-boeing-737max-training-idUSKBN1ZL0EH). 실제 비행기 가격이 1,000억 원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1/10 수준이다. 훈련 비용은 시간당 500~1,000달러(미화)라고도 했다.

더러는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라고 궁금해 할 수 있다.

훈련을 위해 실제 비행기를 사용할 경우 연료비는 물론, '승객을 태우고 운송했을 때 벌 수 있는 수입'이라는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 시뮬레이터는 연료를 쓰지 않는다. 유지비는 전기료와 각종 부품 교환, 운영을 위한 인건비가 거의 대부분이다. 다소 높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훈련할 경우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정상 상황에 대한 훈련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실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양쪽 엔진을 껐다가 켜기를 시도하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지상 충돌을 하게 된다면 인명피해와 비행기 손실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실제 비행기로는 엔진 문제, 비상 착륙 등 극한 상황 훈련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

시뮬레이터는 스크린을 몇 번 터치하는 것으로 엔진 고장·화재, 각종 계기의 고장, 여압 문제 등 대부분의 비정상 상황을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재현해 낸다.



문제 해결 방법의 다양한 접근 법,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

이번에 언급한 시뮬레이터 체크에서 우리를 평가한 심사관은 조종사 전체를 책임지는 운항 본부장이었다(이하 본부장이라고 언급하겠다). 그는 부기장들 사이에서 비행 중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비행 지식 질문도 많이 하고 절차를 규정대로 하는지 꼼꼼히 본다고 한다.

한국인 동료 기장님 몇 명이 그와 시뮬레이션 체크를 본 적이 있는데 비행 전 구두 심사에서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었다고 했다. 어떤 질문에 대답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서 질문을 계속했단다. 말로만 들어도 피곤하다. 시뮬레이터를 조작할 때도 한 번 비정상 상황을 주면 어떤 말이나 조언도 하지 않으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 상황을 해결할 때까지 가만히 둔다고 한다. 보통 해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경우 체커 본인이 답답해서라도 이래저래 조언을 주고 해결하도록 하거나 다음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예정된 다른 과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비행 중 실수하면 바로 혼내거나 심지어 꿀밤 주는 대신 불합격(Fail) 시키지는 않는 교관이 있는 반면, 본부장은 어떠한 관여 없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냥 불합격시키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체크 전 날, 부기장과 호텔 밖에서 저녁 식사를 했었다. 시뮬레이션 센터가 있는 하이커우(海口) 시내에서 꽤 평점이 높은 해산물 식당이었는데 부기장이 알아서 주문하고 비용까지 모두 지불했다. 보통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사주는 한국의 문화를 감안했을 때, 나는 고마움을 넘어 미안했다. 그런 나에게 그가 했던 말은 "내일 체크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였다. 본인이 실수를 하면 도와달라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본부장은 그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체크 때, 부기장이 그에게 많이 혼났다.

먼저 자리를 잡고 수조에 살아있는 해산물을 골라 주문 후 결제하면 요리로 만들어다 준다

부기장이 평가받는 도중에 양쪽 엔진이 꺼지자마자 먼저 나서서 나에게 비행기 조작을 넘긴 것도 그런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야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기장이 조작 임무를 넘겨받는 게 맞지만 시뮬레이터에서는 훈련 목적상 부기장이 그대로 한다.

혹시나 조종사 분들 중에 이 글을 보실 수도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내가 본부장으로부터 받았던 체크 과목을 나열해 본다. 부기장이 체크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봤던 내용이다. 보잉 737 비행기 기준이다. 이게 왜 까다로운지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풀어쓰기를 시도했으나 설명이 쉽지 않아 포기했다.
전문가 영역이므로 그냥 넘기셔도 된다.

... 이전 과목 생략 ...
이륙해서 순항고도로 상승 중 Both pack light가 on 되었고, Checklist 하니 하나가 꺼져서 목적 공항으로 Continue.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동안 여압이 Slow leaking 되고 있었음. 즉시 강하 요청하면서 출발 공항으로 Divert 했으나 MEA가 12,800피트라서 결국 Warning이 울렸고 산소마스크를 쓰게 됨. 어느새 공항은 VOR 어프로치 조건으로 변경되었고 날씨도 거의 미니멈에 가깝다고 함. Initial Fix에서 홀딩하면서 이전에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checklist 하고 Flap 내리는 중에 Leading edge transit light가 들어옴. 어프로치 속도가 F15+15노트로 매우 빨라짐. 현재 무게가 72톤이라 Maximum landing weight 보다 7톤이 많아 연료를 줄이려고 홀딩 요청함. ATC는 기상이 점점 나빠져서 안된다고 함. 이제 막 준비를 마치고 활주로로 접근 시작하려는데 Dual FMC fail 상황이 발생함. 홀딩 계속 유지하며 조치하고 Final로 접근. 공항 wind는 최대 정측풍이지만 Final은 배풍이 5 kts가 되도록 방향을 살짝 바꿔 놓음. 어프로치 속도와 배풍 때문에 950~1,000 fpm의 강하 속도로 접근해야 on path 유지가 가능함. App. light가 미니멈 100ft 위에서 보임. 그전까지 IMC 상황이므로 계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외부 참조물 확인한다고 고개 들다가 조종간을 잡고 있는 팔이 조금만 당겨지면 4 white, 반대로 누르면 바로 sink rate GPWS 울려서 Go-around 해야 함. 외부 시각 참조물이 보이면 Offset 된 VOR에서 Final로 정대해야 하는데 이 때도 Bank를 주되 강하 fpm에는 변화가 없어야 함. 끝까지 접근하다가 나중에야 50 feet부터 알려주는 RA call이 안 나오는 걸 알고(FMC fail 사유) 감으로 랜딩 하게 됨(하드 랜딩 발생 가능성). 접지하자마자 APU fire 발생으로 Evacuation 처리.


앞서 양쪽 엔진이 모두 꺼진 상태에서 재시동이 되지 않아 한중이라는 곳으로 회항(回航, Diversion, 비행하여 되돌아 감)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때, 본부장이 뒤에서 시뮬레이터를 조작을 하다 말고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와 조언했다고도 했다. 이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그의 조언대로 조종간을 눌러 고도를 떨어뜨리며 비행기의 속도를 높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동 레버를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했다. 엔진이 서서히 살아났다. QRH의 체크리스트는 비행 고도가 8,230m 이상일 때, 속도를 275노트(509.3km/h), 이하 고도일 때 300노트(555.6km/h)유지하도록 지침을 준다. 그 속도 이상으로 맞바람을 받아야 엔진의 팬(fan)이 돌면서 시동이 다시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본부장의 행동이 이례적이었던 것은 알려진 그의 성격을 반영한 생각이기도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불쑥 나타나 다른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엔진이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조작 입력을 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엔진이 다시 살아날 것에 집중해서 조언을 했다. 나는 만에 하나 엔진이 살아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착륙 공항에 집중한 점이 달랐다. 높은 산악 지대라 고도 손실에 유의해야 했고, 평야 지대보다 활공 착륙 시 비행기에 줄 손상이 더 심각하게 고려되었다. 한중 공항은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도 확인해야 했다.

본부장과 내가 했던 각각의 순간적인 판단에 대해 누가 더 옳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따져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엔진이 꺼졌을 때, 비행 고도가 8,230m 이상이면 속도를 300노트 이상 올렸어야 하는 정도는 미리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무언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체크리스트의 비정상 상황 대응 내용을 모두 외울 수 없다. 특히, 나는 반드시 외우도록 돼 있는 내용을 제외한 사항들은 오히려 외우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 외우기에 그 양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내용이 변경되었을 때 머릿속에 업로드된 기억의 자료를 함께 업데이트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이기에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기억력 착각의 오류'라는 것이 오히려 실수를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긴장된 상황으로 몰리면 착각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메모리 아이템은 시동 레버를 제한된 엔진 온도 내에서 내렸다 올리면서 다시 시동이 걸리기를 시도하는 것까지 되어 있다. 주변에 착륙할 공항을 알아보기 전에 부기장에게 체크리스트를 먼저 읽도록 했다면, 산악지형에 충돌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비행기를 강하시켜 일단 속도를 300노트 이상으로 올렸을 수도 있다. 또는 우선 산악지대를 벗어나고 체크리스트를 읽으며 속도를 올렸을 수도 있다.


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시뮬레이터 훈련의 효과는 분명 있었다. 어쩌면 일어날 수 있는 비정상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산악지형이 아니었다면 어떤 선택을 먼저 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 간접 경험을 톡톡히 했다.


양쪽 엔진에 시동이 다시 걸렸다. 나는 시뮬레이터 훈련 목적에 맞게 비행기 조종 임무를 다시 부기장에게 위임했다. 엔진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으므로 우리는 출발지인 시안 공항으로 회항했다. 공항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양쪽 엔진에 불이 났다. 이전에 발생했던 엔진 꺼짐은 불이 나는 상황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번에는 본부장이 부기장에게 계속 비행기를 조작해서 활주로에 내리라고 얘기했다. 부기장이 긴장했는지 보통의 활주로 접지 지점을 지나 길게 내렸다. 랜딩 후, 엔진에 불이 났을 때 해야 하는 메모리 아이템(Engine fire memory item)을 하면서 체크가 마무리됐다. 아니, 마지막 랜딩 때문에 부기장이 또 혼나며 끝났다.


발생할 확률이 낮은 복합적인 악조건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역설(力說)했던 이유는 시뮬레이션이 심사관에 따라 훈련의 목적이 아닌 평가 목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심사관인 본부장이 어떤 사람이고, 체크를 받기 전 날, 부기장이 왜 우려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결국, 심사관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에 대해 미리 아는 것도 시뮬레이션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일반 직장에서 평가 권한을 갖고 있는 상사의 성향에 맞추려는 것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임을 감안하면 사실 그렇게 희한한 일도 아니다. 모든 일이란 게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 이제, 평가의 시간이 왔다. 앞서 언급했지만, 조종사는 매 6개월마다 시뮬레이션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중국에서는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니다.   

본부장은 엔진이 모두 꺼진 상황에서 내가 한 결정에 대해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하는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잘했다"라는 평가를 주었다. 문제 해결 방법에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공유하는 듯했다.

또 다른 면에서 '그도 결국 조종사이자,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 볼 줄 안다고 해야 할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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