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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un 18. 2023

100일 동안

우영에게

자기가 떠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야. 힘든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나름 잘 버티고 있어. 오늘도 나는 100일 전과 변함없이 셋째 주 정기 법회에 다녀왔어. 100일이 되는 날에 자기를 위해서 기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법회가 끝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국수를 후루룩 빨리 먹고 집으로 귀가했어. 이유는 알고 있지?  애들 밥을 챙겨야 하니까. 사실 사람들이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이 고맙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동안은 국수를 안 먹고 왔었어. 그런데 오늘은 피하지 않고 그냥 먹었어.


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어. 49일 이후로 날짜를 헤아리지 않았. 런데 고작 100 일을 자기 없이 지낸 거네. 자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를 제자리에 놓  별다르지 않게 일상을 보내려고 나도 애들도 노력하고 있어.  기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자기의 서류들 때문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자기 이름 옆에 폐쇄라고 쓰인 서류를 제출하고 서명을 하는 날이면 저녁 시간이 너무도 힘들었어. 그런데 큰아들 책상 위에 다섯 식구가 모두 들어가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파일에 꽂아서 세워둔 것을 보고 내 맘 하고 비슷하구나 생각했어. 우리 맘이 그러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 자기를 위한 대책위도 만들어져서 열심히 도와주고 있고 변호인단도 다시 꾸렸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 하고 있어. 잘 되겠지?


장마지기 전에 공사하려고 했던 거 미루다가 종성이가 사람들 데리고 와서 저렴한 돈으로 지붕이랑 데크 썩은 것도 공사를 해줬어. 지붕이 생겨서 비 샐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대청마루처럼 앉아서 뭐든 할 수 있어. 지원이 아빠가 폐기물도 치워주고 발판도 만들어줘서 비 올 때도 신발이 젖지 않게 주차장까지 나갈 수 있어. 내가 살면서 보답할 거야.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어. 둘째는 벌써 방학을 해서 집으로 내려왔어. 둘째가 아르바이트하는 거 모르지? 자기 떠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우리가 쓸쓸할까 봐 서울에서 안 하고 집 근처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금요일 저녁이면 매주 내려와. 기특하지? 우리 집 이쁜이 막내는 키가 아주 많이 컸어. 사춘기 시작 같아. 운동장에서 노느라 얼이 까맣게 탔어. 학원이 끝나면  매일 걸어서 유치원까지 왔다가 같이 퇴근해. 큰 놈은 자기를 대신해주고 있어. 공부가 끝날 때까지는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유치원에 일이 있어서 늦거나 문체부, 저작권 위원회, 변호사 사무실을 맘 놓고 다닐 수 있도록 막내를 잘 챙겨주고 있어.


나는 무력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어. 간혹 해야 할 일들이 겹쳐서 미칠 것 같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밀렸던 유치원 일을 마무리하고 집안 정리와 청소도 대충 마무리가 되고 있어. 요즘은 퇴근하면 아이들 저녁을 빨리 해주고  마당정리를 해. 수돗가 옆에 체리나무 알아? 올 해도 체리가 안 열려서 베어 버리고 꽃밭을 만들고 있어. 앞으로는 채소 말고 월동을 잘하는 꽃들 마당에 심어보려고 해. 아플까 봐 걱정하지 마. 이렇게 일을 하고 나 밤에 잠이 잘 와.


지난 늦가을에 자기와 함께 심은  양파는 벌써 다 뽑았고 마늘은 아직 다 못 뽑았어. 이 번주에 비가 오고 나면 뽑으려고 해.  올해는 대충 심은 상추가 얼마나 잘 됐는지 몰라 이것도 자기가 없어서 다 나눠줬어. 햇 양파도 마늘도 첫 수확이라고 식탁에 놓았는데 애들은 별로네.'자기가 있었으면 매일 상추에 양파, 마늘을 담아 놓기가 무섭게 없어졌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 자기의 부재를 실감해.


나뭇가지에 잎이 돋기 시작할 때 자기는 떠났고 이제는 무성한 잎으로 가득한 나뭇가지들이 초록을 자랑하고 있어. 또 100일이 지난 후에 저 나무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겠지? 계절은 돌고 돌아서 다시 돌아올 텐데 자기는 돌아올 수가 없구나. 하지만 나는 오늘보다 이쁘고 행복한 정원을 만들어서 그곳에 서 있을 거야.  섭섭한 것도 궁금한 것도 많지만 이제 그런 질문은 그만할래.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여러 감정들에 떠밀리지 않고 담담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거야.


그동안 나를 믿고 맡겼던  것처럼                그냥 잘 지켜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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