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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Oct 15. 2021

유튜브

나는 n연차 가정주부다 #9

유튜브, 그것은 주부를 위한 궁극의 요리 선생님!


고백한다. 나는 유튜브를 좋아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전문가들이 만드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잘 짜이지 않았으면서 어설프고, 오글거리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볼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따금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사진과 텍스트만으로는 해결이 힘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때 보조 자료로써 활용할 뿐, 이 난잡할 뿐인 영상 매체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년 전, 하나의 영상이 계기가 되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 나는 스테이크라는 음식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퍽퍽할 뿐인 고기를 소스에 찍어먹는, 비싸기만 할 뿐인, 거품 가득 끼어있는 음식. 그것이 나가 갖고 있던 스테이크에 대한 이미지였다. 연애 초반,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무척이나 놀라워했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스테이크를 싫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인가 손수 스테이크를 구워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을 뿐. 그렇게 나는 스테이크의 맛에 빠져들었고, 어떻게 해서든 맛있는 스테이크를 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날, 너무도 맛있게 고기를 구워주었던 아내에게 방법을 물었지만, 그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대답을 들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두 번 다시 나는 아내로부터 그날의 스테이크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에게 스테이크는 그만큼 어려운 음식이었다. 아주 덜 익거나, 너무 더 익거나. 수많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내가 얻은 결과물은 저 두 개의 극단뿐이었다. 당시 내가 아는 지식은 두 가지뿐이었다. 고기는 센 불에 육즙을 가둘 것. 구운 고기는 먹기 전에 잠시 쉬게 해 둘 것.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테이크를 가정집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유튜브를 우연히 보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스테이크를 굽는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의 유튜브였다. 칠판을 두고, 분필로 판서를 해가며 열심히 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는 괜한 신뢰가 갔으며, 그 와중에도 내용을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입담은 매력적이었다. 영상은 깔끔했고, 녹음도 듣기 좋았으며, 구성도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가량의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내가 다 틀렸었구나!'


내가 가지고 있던 요리에 대한 지식은 너무도 얇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틀려있었다. 어릴 적부터 부엌을 기웃거리며 대충 뭔가를 만드는 시늉을 내었다고 해서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그냥 흉내만 내고 있었구나! 그렇게 나는 최초의 구독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유튜버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요리 선생님이다. 이유도 모른 채 그저 흉내만 내던 많은 행위들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리하기 그지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보다 흥미로운 영상들을 추천하기 시작했고, 나의 구독 리스트는 점점 늘어났다. 대한민국 모든 주부의 요리 선생님인 백 선생님으로부터 레시피를 가져오고, TV에도 종종 나오던 일식 셰프로부터 연어 필렛을 손해 연어장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어딘가의 할머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마른 나물을 불려 취나물 밥을 하고, 꽁치 조림도 종종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배우는 비용은 고작 광고 몇 편 보는 게 전부다.


유튜브를 접하기 전, 나의 요리 지식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그 레시피 노트와 캐나다에 처음 와서 어깨너머로 훔쳐 배웠던 푸드코트의 주방보조 시절이 전부였다. 그나마로도 어떻게든 먹고살아보겠다고 주방에서 뚝딱뚝딱 음식을 하며 나름 잘 챙겨 먹기는 했었다. 그런 어설픈 실력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먼 길 오신 처가 어른들께 김치찌개니 감자전이니 직접 해서 드렸던 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나에게 나의 주방이 생겼고, 그곳에서 먹을만한 음식일 그럴싸하게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움은 있었다. 분명히 틀려있음이 느껴짐에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음에서 오는 답답함이 있었다. 어머니가 옆에 있었다면 그저 편하게 물어보았을 것을, 그럴 수 없는 거리로부터 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아쉬움과 답답함, 안타까움은 하나의 매체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맛이 없던 스테이크가 맛있어지고, 집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도 못해본 메뉴들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으며, 음식을 하는 행위에 즐거움이 더해졌다.


나의 스마트폰에는 하나의 메모장 파일이 있다. 유튜브를 보며 해보고 수정하며 만든 나만의 레시피 노트이다. 수차례 전화기를 교체하는 와중에도 애지중지 혹시나 날아갈까, 행여나 사라질까 그렇게 백업에 백업을 해놓고 열심히 갱신하는 나의 소중한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내게 전해준 이 보물이 맛있는 한국음식 먹기가 하늘에서 별 따는 일과 같은 이 만리타향에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익숙한 목소리를 주방 한켠에 틀어놓고, 오늘도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해도 해도 쌓여있는 설거지도, 찔끔 눈물이 나게 매운 양파 썰기도 싫지가 않다. 내 옆의 최고의 요리 선생님들이 언제고 나의 주방을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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