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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내가 떠나는 이유_나 좀 살자!

내가 떠나는 이유_나 좀 살자! #06

[Me] 목적 : 이 여행은 나를 나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최근 2년 사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상실감에서 파생된 부정적 생각들이 많아졌고, 하필 이 시기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압축되게 부림이 당해지던 때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를 돌볼 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건강하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는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누구나 쉽게 접하는 질병인 감기, 대상포진, 코로나19 등은 빼놓더라도 수면장애, 위 관련 질환(위경련, 위염), 스트레스성 질환(편두통, 이명, 현기증), 면역력 저하(기관지염, 갑상선염), 부인병(자궁근종, 호르몬 이상, 생리증후군 심화, 과다 생리 등), 외상(인대파열, 디스크염, 자상, 담 등)과 같은 내/외상 질환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이 모든 증상들이 단기적으로 순차적 또는 병행해서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해야 할까!


 원래도 하루에 3~4시간 걸리는 출퇴근 거리를 인대파열로 깁스 상태로 다녀야 할 때는 마스크 안으로 짭짤한 눈물 참 많이 맛본 것 같다. 그러다 부인병 질환들이 일상생활을 힘들게 할 정도로 증세를 내 보이면서 더 이상은 나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자해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지킬 의무가 있다.


  당장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수술이든 치료든 이와 같은 외적인 부분은 병원에서 전문가분들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예정이다. 다만 이 모든 증세의 근원이라 말하는 스트레스는 환자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게 모든 의사 선생님들의 한 목소리였다.


 스트레스의 원인이라!

 결국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회사에서는 여태 힘든 거 그렇게 어렵게 해결하고 이제는 안정화 단계인데 왜 지금 쉬려 하냐고 아깝지 않냐고 말들 한다. 역시 회사는 회사다. 그 해결하는 동안 내 몸뚱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고요!! 지금 쉬면서 치료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것 같다고 휴직의 사유를 내었으나 이해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휴직은 받아들여져서 그렇게 우선 강박적으로 억압된 물리적 환경을 개선했다.


 그리고 쉬면서 친정어머니를 모셔와서 한 달간 같이 시간을 보냈다. 오빠가 떠나가고 우리는 제대로 그 이야기를 꺼내놓고 이야기하지를 못했다. 이대로면 남은 사람들은 오래도록 마음의 병을 안고 갈 일이다. 자연스럽게 그를 추억했고, 미루고서 하지 못한 해결해야 할 남은 일들을 정리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묶어두었던 내 마음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도 조금은 단단해진 표정으로 삶의 의지를 다지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출퇴근이 멀어서 아이가 잠든 새벽에 집을 나가고 잠들기 직전에 집에 들어오는 삶이다 보니, 늘 미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더구나 최근 내가 몸도 아프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 케어는 큰 남자가 거의 전담하듯 해줄 수밖에 없었다. 몸에 밴 습관으로 새벽에는 눈이 자연스럽게 뜨였지만 누워 있었다. 아이가 눈 뜨며 " 엄마? 엄마!" 하며 내 쪽으로 또르르 굴러와 폭 안길 때 느껴지는 그 따스한 순간이 좋았다. 아침마다 메뉴를 바꿔가며 준비하고 품평받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상이었다. 코 앞이 학교지만 그 코앞까지고 손잡고 나가서 걷는 것도 좋았다. 교문 들어가기 직전 뒤돌아 손 흔들어주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의 뭉클함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교 시간 맞춰서 교문 앞에 서 있으면 또 저 멀리서부터 엄마를 보고서 아이는 내달린다. 그렇게 허리 감싸며 안길 때면 뭐든 다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뭐 물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이와 티격태격할 일 도 많아지긴 했다. 그래도 그 일상조차도 너무나 소중했다.


큰 남자와도 많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원래도 우리 둘은 다른 부부에 비해 대화가 많은 편인 듯하다. 하루종일 카톡도 화면 몇십 개를 넘겨야 할 정도로 이야기가 매일매일 넘쳐난다. 별 이야기는 없다. 일하다 생긴 일, 들은 이야기, 가족이야기, 친구 이야기, 뉴스거리등 여러 가지를 메모하듯 서로에게 보낸다. 물론 우리는 또 서로를 억압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톡을 읽지 않는다 해서 왜 안 읽냐?? 이런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꼭 답을 바라고 보내는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상대의 바쁜 일상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시간 될 때 보고 답하겠지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좋고 편안한 친구 같다.


 나의 힘든 시간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많은 위로를 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남편이니까 당연하지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난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 꼭 집어서 정정해주고 싶다. 남편이라고, 부인이라고, 부모라고, 자식이라고 당연한 건 없다. 모두가 당연하게 나에게 맞춰서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건 정말 이기적인 기대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그렇게 해주는 이가 있다면 정말, 정말 감사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알면서도 늘 부족했다. 고맙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래서 쉬는 동안 더 자주 말로, 글로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걱정할까 봐 굳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터놓고 이야기 나누었다. 정신적으로 여전히 아프다는 거, 육체적으로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부분, 힘든 부분 모두 그때그때 설명해 주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남편도 나를 이해하기 쉬워지니까.  큰 남자는 그렇게 나의 힘든 마음을 위로했다.


 " 네가 괜찮아지는 거라면 뭐든 같이 해줄게.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렇게 휴직 후 병원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더 효과적은 치료 방법을 위해 이런저런 검사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최종적으로 수술은 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로 몇 개월 더 진행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치료 잘 받으면 호전이 될 거란 믿음이 생기니까 마음도 생활도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온전히 나 스스로 편안한 시간들만 채워가면 다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내가 쉴 때 본인도 한 달 정도 쉬겠다고 했다.

 " 그러면 너무 좋지만, 나 휴직인데 자기도 쉬면 우리 뭐 먹고살지? "라고 물었더니

본인 회사에서는 안식 유급 휴가 제도가 있고, 아이는 겨울 방학 때니 함께 어디든 가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부랴부랴 JJJ 긴급 발동!!

안건 : 우리는 1월 발리로 한 달 살기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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