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Mar 15. 2024

청교도와 제국주의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지만, 책의 결론부터 언급해야겠다. 18세기 초 청교도(영국 성공회에 대척했던 비국교)로 무장한 중산층이 식민지 건설로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과정을 알레고리화한 소설이다. (여기서 '알레고리'란 용어를 잠시만 살펴보자. 알레고리란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이다. 주로 도덕적, 교훈적, 풍자적 내용을 표현할 때 쓰인다. 은유가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지만,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고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책에 대해 무척 각박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조금은 위험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는 이 책은 나에게 '국적과 세대를 뛰어넘는 여행기 문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로빈슨 크루소⟫를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 심리 소설로 보는 전문가들로 있지만, 저자인 다니엘 디포의 18세기 영국의 특별한 시대를 겪으며 경험한 파란만장한 삶을 미루어 보아 ‘청교도(비국교) 비호’와 ‘식민지 개척’이라는 두 화두를 외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며 팽창해 가던 18세기 영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전형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특히, 잘못을 저지르고 징벌을 받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크루소의 순례자적인 인생 편력 과정은 '순례'와 '모험'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크로이츠나에(Kreutznaer)라는 그의 가족의 본래 성에서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또한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아버지에 대한 불복종, 징벌, 회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패턴을 정확하게 토대로 삼고 있는 종교적 알레고리이다. 다시 말해 로빈슨 크루소는 무엇보다도 근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경제적 개인주의를 구현하는 경제적 인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편하게 무인도라는 황량한 환경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 그의 독실한 신앙심 등을 재치 있게 풀어낸 소설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그런지 소설도 자꾸 서사적으로 그리고 편향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읽을 땐 크루소의 모험과 감정에 몰입했다면 이제는 무인도의 원주민 ‘프라이데이’라는 인물에 동화 혹은 감화된다. 사실 ‘프라이데이’라는 이름도 원래 자기의 이름이 있었을 테지만 결국엔 크루소가 일방적으로 명명한 이름일 뿐이다. 과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권위적인 제국주의자 크루소, 우리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에 자행되었던 일본식 성명 강요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내 이름은 어머니의 가족명을 따라 로빈슨 크로이츠나에라고 지어졌다. 하지만 영어 단어에서 흔히 있는 발음 와전 현상 때문에 우리 가족의 성은 지금은 크루소라고 불리고 쓰이게 되었다.


▶︎ 주인공의 이름마저 청교도(프로테스탄티즘)스럽다.



느닷없는 기쁨이란 느닷없는 슬픔처럼 우선 사람의 넋부터 빼앗는 법이다.


▶︎  출처가 불분명한 인용문이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들어가는 입구는 문이 아니라 짤막한 사다리를 이용하여 울타리를 넘어가는 방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온 뒤 사다리를 들어 올리면 온 세상으로부터 내 거처가 이 울타리에 의해 요새처럼 완벽하게 방호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따라서 나는 밤에도 안전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런 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알았지만 사실 내가 적들로부터의 온갖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았다.


▶︎ 평범한 묘사로 보이지만, 그냥 읽다 보면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훌륭한 소설은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불현듯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파종의 도움 없이도 이곳에 곡식이 자라나게 해 주신 것이며, 게다가 순전히 이 일이 거칠고 험한 이곳에 살고 있는 내 생존을 위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생각에 가슴이 약간 뭉클해졌고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자연의 경이로운 기적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축복하기 시작했다.


▶︎ 살아갈 이유가 단 한 가지만 있어도 인간은 버틸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종교는 그 이유를 합리적이고 한편으론 감성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믿음이란 결국 이렇게 커지고 견고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게도 내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에게 앞으로, 그의 이름은 그를 구해 준 요일인 〈프라이데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날을 기억하려고 그렇게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주인님〉이라는 말도 가르친 뒤 앞으로 그게 내 이름이 될 거라고 알려 주었다.


▶︎ 로빈슨 크루소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 무척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한 부분이기도 하다. 오만함은 자신이 오만하다는 사실을 모를 때 가장 무섭다. 대부분의 잘못된 신념이란 바로 거기서 싹이 자라난다.


3.

제국주의의 알레고리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고전 명작을 다시 읽고 싶은 분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분

소설을 서사적으로 읽고 싶은 분


로빈슨 크루소

저자 : 다니엘 디포
번역 : 류경희
출판 : 열린책들(201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전 18화 메모를 글쓰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