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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알 Aug 13. 2022

9. 아이의 짜증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의 짜증 대처법

일상의 어느 날 나의 루틴 이렇다.


아침에 아이 등교시키고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린다. 연이어 청소기도 돌린다.

 빨래를 널고  잠시 숨을 고르고 출근을 한다.

쉬는 시간 없이 상담이 이어지고, 상담 후  잠시 의견 조율을 하다 보면 아들 픽업 시간이 늘 빠듯하다.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아이에게로 향한다.

조이를 픽업한 후 조이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배도 고프고 에너지도 고갈된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더 지친다.


 9시간 만에 만난 아이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면 사라지고 아이의 쏟아지는 요구가 버겁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간다. 참고 있지만 눈빛으로 표정으로 아이를 거부하고 있다.

엄마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민감한 아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나는 계속되는 아이의 요구 거듭 거부하게 된다. 아이는 사소한 일에 계속 짜증을 낸다.

쌓아두었던 아이의 감정이 종이 접기를 하면서 폭발한다!


"아이씨!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라고 날카롭게 내뱉는 아이의 짜증에 엄마도 폭발한다.

"안될 수도 있지 그게 화낼 일이야? 이제부터 어려운 종이접기 하지 말고 쉬운 거 찾아서 해!! " 

라고 말하고 아이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른다.


어떤 날은 아이의 짜증에 뚜껑이 열려 요리를 하다가 요리 도구를 싱크대에 세게 탁 내리친 적도 있다.

   

오늘도 아들이 먼저 짜증 냈으니  아들이 사과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 사이에 잠시 이어진 침묵, 그 침묵의 시간에 문득 조이의 짜증을 돋웠던 나의 태도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찡그린 표정으로 일관했고, 아이의 요구를 끊임없이 들어주지 않았다

이 거절감은 아이에게 정서적 단절을 경험하게 했고, 아이의 정서 통장은 마이너스가 되었고, 짜증이 유발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이것은  부모가 알아주고 다줘야 할 감정인데  난 내 몸이 내 마음이 힘들다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뒤집에 씌운다.


이어 우리 엄마의 짜증이 떠오른다, 늘 지쳐계셨던 엄마는 화를 잘 내지 않으지만, 짜증을 종종 내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도 아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하지만 짜증은 자주 낸다. 내 무의식과 의식에 저장된 엄마의 짜증은 대를 이어 아들 조이에게 대물림 된다.


평상시에는 아들이  먼저 사과하면

' 사과하는 것이 잘 훈련되고 있구나! '라며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안도감안에는 내가 아이를 이겼다는  내가 아이를 컨트롤했다는 승리감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온늘은 조이가 사과한 후 미안함이 몰려온다

"조이야, 조이는 오늘 왜 짜증이 많이 날까?

"잘 몰라, 안 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그랬어"

이 진심만 들어도 엄마의 마음이 달라진다. 아이도 모르게 아이를 짜증으로 이끄는 요소들이 있었던 것이다.


"조이야, 엄마가 조이한테 부드럽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해, 조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

"아 엄마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사나워서 내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 근데 나도 엄마에게 부드럽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는 아직 자신의 감정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연결시키고 파악하기 어려운 나이다.

가끔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파악해 알려주고, 부모의 쓴 뿌리가 작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아이는 감정을 배우고, 잘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된다.

 

"조이야, 엄마가 가끔 유난히 더 피곤할 날이 있어. 앞으로는 그때 미리 말해줄 테니까 그때는 조이가 엄마를 좀 더 배려해줄 수 있을까?"

"응! 엄마가 부드럽게 말해주면 내가 엄마 잘 배려해줄게."

"조이야, 고마워!"


아이의 감정을 케어하는 만큼 엄마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에 맞추어 대처하는 것이다.

 그 후 또 힘든 날이 찾아왔다.  조이를 픽업해 집으로 오는 길에 대답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 날이었다.

엄머가 반가운 조이는 오늘도 폭풍 질문 세례를 쏟아 놓는다.  이야기를 들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조이야, 엄마가 많이 지쳐있어. 정말 미안하데 말할 에너지가 없어. 집에 가서 좀 쉬면  에너지가 충전될 거 같은데 그때 다시 이야기 나눠도 될까?"


내 뒤를 종종 따라오 혼자 스토리텔링하는 조이가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는 최선이다.


나는  아이의 짜증을 다루며 오늘도 나를 더 알아간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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