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아이의 분노에 나도 남편도 휘둘리는 순간이 있다.
부모가 이성을 찾기 어려운 순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부모가 더 크게 소리치는 순간이 우리 집에는 가끔 있다.
조이는 화를 내고 싶은 만큼 내고난 후 평화를 찾고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나는 정작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잠자리에 누워서 물어본다.
"오늘 가장 속상한 일이 뭐였어?"
"유치원에서 나한테 욕했던 친구가 있었어. 그때 정말 기분이 나빴어."
"진짜 화나고 속상했겠다! 친구가 다음에 또 욕하면 하지 마!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그래도 계속하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
"또 없어?"
"엄마가 오해한 게 너무 억울했어"
아차 싶었다. 가끔 보드게임에서 이기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그 버릇을 고쳐줘야겠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 조급함으로 아이를 다소 과하게 통제하고 다그쳤던 나의 행동이 떠올랐다.
정직은 분명히 알려줘야 할 덕목이지만 나의 조급함이 섣부른 오해를 불러오고 아이를 화나게 했던 것이다.
오늘 이미 유치원에서 힘들었기에 정서 통장이 마이너스인 채로 왔는데 엄마는 아이의 정서 통장이 마이너스인 줄도 모르고 엄마의 의도대로만 상황을 끌고 갔던 것이다. 엄마의 조급함이 아이를 몰아세우는 꼴이 되었고, 차곡차곡 쌓였던 아이의 속상함이 분노가 되어 폭발했던 것이다.
부모는 많은 순간 조급해한다.
조급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부모가 조급할 때 아이는 온전히 배울 수 없다.
부모가 조급할 때 아이는 인격적으로 양육될 수 없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아가기에 사회성을 훈련해야 한다.
가정,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워간다.
이 사회성이 건강하게 잘 갖추어지려면 한 개인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럴 때 타인을 향한 존중을 장착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 아들을 다시 바라본다.
자녀에게 잘잘못을 가르치기 이전에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인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의 기준과 잣대로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인격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이렇게 살아야 해."
말로 가르치기보다 나의 삶을 통해 아들이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