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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알 Jun 10. 2022

8.  한걸음 뒤에서 아이 따라가기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30년 전, 1학년 때부터 꽤 먼길을 혼자  등하교했다.

집에서 돌봐야 하는 동생이 둘이라 엄마는 큰 딸의 등굣길에 동행할 수 없었을뿐더러 우리 때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혼자 등하교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었다.


나의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어야 학교에 도착했다.

엄마도 나도 그 길이 위험하거나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등굣길에 만난 친구 덕에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고,

하굣길에는 마음껏 놀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주말에도 어린아이들끼리 꽤 먼 거리를 다녀오는 일은 했다.


그때도 역시 부모도 아이도 염려하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 갈 거야?""어디 갔었어? " 이 물음 오갈 때 건네셨다. 핸드폰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초등학교는 거리에서,

중학교는 친구 집에서 ,

고등학교는 학교와 독서실에서 보냈다.


가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늦게 간다고 하고 새벽 1시까지 밤거리  활보하다 들어간 날도 있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상쾌했고, 고요해진 세상에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밤거리는 나의 휴식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삶에 사연이 쌓이고 지인들의 사연이  찾아왔다. 

친구가 필리핀에서 만난 총든 강도 이야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지인 이야기,

   아이의 유산 경험,

조이의 손가락 절단 사고 등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양한 충격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고,  예전보다 조금 더 불안해졌다.

  

조금 더 짙어진 나의 불안은 아이에게 지나친 개입으로 이어졌다.


조이가 1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 등교를 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 해보겠다는 의지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교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안심이 되어 나 편하자고 아이와 동행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놀 때에도 조심해! 위험해! 를 반복하고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질까 걱정,

나뭇 가를 들고  놀면 자신과 타인을 찌를까 봐 걱정,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면 킥보드 타는 어린 친구들과 부딪힐까 봐 걱정,

아이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이를 눈치 보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놀이터 에티켓을 가르칠 필요는 있다.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한 기본 지침은 부모가 꼭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실수할까 봐 다칠까 봐 피해 줄까 봐 전전긍긍하며  자주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아이의 자율성에 대한 침해이며 아이의 불안을 높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조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아이를 멀리서 바보기로 한다. 아이로부터 한걸음 떨어지기로 마음먹는다.

조이는 이미 엄마의 개입 히스토리가 쌓인 탓에 조심스럽게 노는 편이다.

그런 조이를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지 않고 일어났을 때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리거나 돕는다.


독립된 성인으로 홀로 서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나는 아이의 손을 조금씩 조금씩 놓는 연습을 이어간다.


내가 걷고 싶은 길로 아이를 끌고 가기보다

가보고 싶은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를 따라가 본다.


아이의 선택으로 함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겠지만 각자의 인생에 자기 몫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아들의 뒤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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