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춤 2>, 1909
첫째, 탐욕을 차단하고,
관계를 사유한다.
나를 기능하게 한다.
둘째, 고뇌를 접고
흠을 받아들이고
삶을 정돈한다.
셋째, 일상으로 치유한다.
결벽을 지우고,
불행을 받아들인다.
나는 매일 성공의 순간을 상상한다. 무조건 성공적인 데뷔 무대가 있어야 봐줄 만한 인생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무대가 없는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인생에 그런 무대는 없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실패한 투자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능력도 가치도 없는 나에게 투자했으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왠지 억울하다. 양심 불량인 적 없었고 법과 규칙과 도덕을 위반한 적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실패한 인생을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다. 죄를 범한 적도 없는데 나는 창피하다
게다가 나는 남들이 나의 불행을 눈치챌 것만 같아 불안하다. 모든 공간에서 나는 숨기 바쁘다. 두리번 거린다.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출현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는 누군가를 유혹하고 갈취하고 유린한 적 없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피해 숨어서 지낸다. 없어 보이는 내 삶이 마치 시장통에서 좌판을 깔고 앉은 장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불행과 근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삶은 매일 불행한 터널로 가고 있는 것만 같다. 터널을 지나고 새 터널을 만나기도 한다. 더 어둡고 긴 터널에 나는 겁이 나고 멈춰 버리고만 싶다. 그것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을 수도 있다. 마치 매일 지겨운 일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지만 나는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고 곧 새 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는 이유는 불행한 삶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