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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Gift From The Sea

by Rainsonata

2022년 5월 21일 토요일


작년 가을부터 올봄까지 600편의 글을 정리하면서 나는 약 40권의 책을 읽었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와 <Gift From The Sea>라는 두 작품이다. 후자는 한국에서 <바다의 선물>이라는 번역본으로 출판되었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표지에 적힌 대로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의 광범위한 주제를 충실하게 다룬 책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래전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집안에 구비해 놓고 느낀 안전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와 관련해서 조금 다른 느낌으로 도움을 준 책은 이태준의 <문장강화>이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웠고, 지금도 서가에 모셔놓고 책장의 문을 열 때마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오늘 나누고 싶은 책은 앤 모로우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의 <바다의 선물>이다. 나는 영문본으로 읽어서 한국어 번역본이 주는 느낌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다행히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에 이 책의 한 단락이 소개되었기에, 그 부분을 발췌해서 여러분과 맛보기로 나누려 한다. 참고로 영문본으로 읽은 그녀의 문체는 부드럽고 이지적이고 우아했다.


"정서와 인간관계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참된 삶' 또한 여기저기 토막이 나서 간헐적이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는 그 말이 모든 순간에,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사랑한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항상 사랑하는 체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거짓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바로 그런 태도를 요구한다. 우리는 삶에서, 사랑에서, 인간관계에서 밀물과 썰물의 현상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빈약하다. 우리들은 파도가 밀려들어오면 반가워서 뛰어 쫓아가고, 쓸려 나가면 겁을 내고 저항한다. 우리들은 파도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우리들은 영원성을, 지속성을, 계속성을 집요하게 강요하는데, 사랑에서도 그렇지만 인생에서는, 지속성이라고 하면 성장 속에서, 흐름 속에서 -- 춤을 추는 사람들이 똑같은 동작으로 응답하면서도 거의 몸이 닿지 않을 정도로 서로 겨우 스쳐 지나가기만 하면서, 모두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그런 의미의 자유 안에서만 가능할 따름이다." - 105쪽


<바다의 선물>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내가 바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만나서 이기도 하고,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 나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읽는 내내 고개를 방아깨비처럼 끄덕이는 자신을 자주 발견했다. 겨울 바다의 한적한 모래사장에서 파도 소리와 함께 읽는 <바다의 선물>은 그 자체가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후에는 그녀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어졌다.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을 들려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바다와 함께 편히 쉬라고 보드라운 담요를 덮어주고, 난 그 자리에서 물러나 잠시 산책을 다녀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월은 산뜻하고 청신하다. 나는 <바다의 선물>을 읽으며 작가도 그런 오월을 닮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했다. 그래서 겨울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오히려 오월을 맞아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천천히 때로는 조용히 가끔은 혼자서 사색의 시간을 즐기는 분들에게 감미로운 여운을 남겨줄 아름다운 수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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