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2022년 7월 18일 월요일
이번 스톰의 몬트리올 출장이 특별했던 이유는 코로나 창궐 이후 2년 7개월 만의 첫 해외 출장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오래 기다려온 '나 홀로 책 읽는 밤'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스톰은 스톰대로 공항에서, 나는 나대로 집에서, 소중한 일상의 한 조각을 부득이한 이유로 접어두었다가 되찾은 기분이었다. 스톰과 내가 추구하는 '따로 또 같이' 라이프스타일이, 힘겨운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도 고유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그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었음을 재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집안의 고요를 즐겼고, 한밤중에는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밑줄까지 그어가며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창덕궁 대조전의 월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드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다. 낯선 명칭에 사전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뜻풀이가 적혀있었다.
드므: 높이가 낮고 넓적하게 생긴 독
그럼 내가 문학 작품을 읽다가 만난 뜻 모르는 첫 순우리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고샅"이라는 단어이다. 스톰의 이직으로 몇 년간 캐나다에서 살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 뒷 뜰 너머는 그린벨트여서 숲이 울창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뭉게구름처럼 보였다. 그 풍경에 매료되어 겨울과 어울리는 시가 읽고 싶어 졌고, 여러 권의 시집을 펼쳐보다가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 훅-- 하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 시를 읽다가 만난 단어가 "고샅"이었다.
고샅: 마을의 좁은 골목길
좁은 골짜기의 사이
그 후부터 나는 순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한결 깊어져서, 퍼즐을 맞추듯 순우리말을 찾아보며 노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십 년 전의 그날도 스톰은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여름에 만난 "드므"도, 한겨울에 만난 "고샅"도, 고요한 집에서 나 혼자 살며시 만난 귀한 손님이다.
혹시 순우리말에 관심이 있거나, 흥미를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말샘>으로의 나들이를 권해드리고 싶다.
<우리말샘: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 사전> https://opendict.korean.go.kr/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