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3일, 따뜻한 봄날에
고로 이 날은 내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기도 했다.
오전에는 회사에서 큰 행사가 있어 이것만 끝나면 점심도 거르고 곧바로 아빠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행사장 앞까지 잘 도착해 내 차가 주차장을 향해 들어서는 길,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 가셨어...........흑흑흑흑...............편안하게.......잘 떠났어........흑흑흑.........”
엄마의 흐느낌과 울먹임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아빠의 사망”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번 주까지는 괜찮으실 거라 믿었다.
해외에 사는 언니 가족이 금요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 역시 이 행사만 끝나면 아빠에게 달려가 수요일 오후, 목요일과 금요일을 내리 아빠 옆에 있으려고 했다.
내 예상은 완전하게 빗나갔다.
나도 엄마처럼 소리 내서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 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엄마.... 엉엉엉....... 내가...... 지금 엄마한테 갈게.......”
“아니야..... 장례식장으로 가. 엄마가 아빠랑 그리로 갈게......”
나는 이제 아빠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들어서지 못한 상황이라 일단 진정하려고 아무 데나 차를 세웠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이제 정말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지경이 됐다.
내가 말도 없이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의아해할 직원들을 위해 우선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어머.......”
나는 엉엉엉 울면서 어떻게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고, 내 말을 들은 직원이 놀라는 소리만 겨우 들었다.
이제 내 눈앞에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터였다. 평생토록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빠라는 존재가 더 이상은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 날이 이어질 것이다.
왜 나는 아빠의 존재가 늘 당연했을까?
아빠는 정말 이 세상을 편안하게 잘 떠나신 걸까?
아빠는 이 세상에서 행복했을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을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감정이 격해지고, 흐르는 눈물이 시야를 가리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교통사고는 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까스로 내비에 가족들과 함께 미리 정해둔 아빠의 장례식장을 찍었다. 내가 엄마, 아빠보다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례식장 사무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로 했어요”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했다. 사무실 직원과 장례식장, 영정사진과 꽃장식, 식사 등을 이야기하는 사이 삼촌들과 이모가 도착했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힘이 났다. 조금 뒤에는 장례사님도 오셨다. 내게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셨고, 부고 안내 작성도 도와줬다.
‘언니가 금요일에 오면 아빠 발인 전에는 못 오겠구나....‘ 생각하는 와중에 언니가 비행기표를 바꿔 목요일에 도착할 수 있다는 극적인 소식을 전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고민 끝에 장례 일정을 하루 미루기로 했다. 장례를 미루는 게 가능한 일인지, 그래도 되는지, 갈팡질팡하는 가족들 사이에 껴서 결정을 내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이런 결정이 처음이라 뭐가 옳은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 장례식에는 언니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이다.
아빠는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장례식을 치를 병원에 도착했다. 하얀 천에 얼굴이 가려지고, 혹시라도 침대에서 이탈할까 봐 끈으로 동여맨 아빠의 시체가 빠르게 영안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요?“
나는 용기를 내서 아빠를 옮기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진심으로 아빠가 보고 싶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빠니까.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아빠를 만나러 갔다. 거의 의식이 없는 아빠를 몇 주간 봐왔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 믿었다. 임종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마지막 모습은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그러세요”
빠르게 흰 천이 걷어졌다. 나는 아빠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아빠의 몸이 너무 딱딱해서 이 상황이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빠가 영안실에 안치되는 모습을 보며 엄마와 함께 오열했다.
“이제 얼마 안남은거 같아서 얄궃은 저 병원복 대신에 새 옷 입혀주려고 샀는데 응급실로 옮기다가 가버리셨어.....“
마지막 옷까지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마지막을 잘 보내고 싶은 아쉬움이었겠지.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아빠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아빠는 거의 의식이 없었는데도 그 말에는 눈을 번쩍 뜨셨다고 했다.
아빠가 영안실의 주인공이 되어 들어가던 순간을 바라보는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슬픈 상처가 됐다.
누구든 피해갈 방법없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거나 자연스러울 도리가 없었다.
나는 계속 울었고, 끝없이 침울해졌고, 아무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남편과 시부모님께 맡기고 나는 엄마와 힘께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아빠의 부고 소식을 보내고; 쉴새없이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친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부고 사실을 전했지만 그 어떤 전화도 받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이게 엄마와 나의 다른 점이자 내기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고, 부고 안내를 더 보내고, 장례식때는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고 있어야 하니까 평상시와 비슷하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는게 신기했지만 그래도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