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an be cruel, poetic, or blind. But when it is denied, it’s your violence you may find
예고편에서 나온 이 수수께끼의 답은 정의다.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배트맨은 공포와 두려움을 선택했다. 공포는 효율적이다. 브루스 웨인이라는 개인이 다수의 범죄자들, 그리고 도시 전체를 감시하는 배트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각인된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배트맨이라는 인물을 관철하는 주제어이기도 하다. 즉, 배트맨과 인물들의 행동을 설득시키기 위해선, 관객들에게 공포를 각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다양한 장치를 사용한다.
우리는 정보의 불균형에서 공포를 느낀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감시 당하는 것은 알지만,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소름이 끼친다. 특히 그 존재가 언제든 우리를 해칠 수 있다면 위협을 느끼고, 소름은 공포로 발전한다. 즉, 시선의 차이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선 대상을 숨어서 관찰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러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화면 전체를 관찰 당하는 대상을 담지 않는다.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물체를 배치하거나 빛의 차이를 통해 대상을 제한적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대상과 우리의 시선을 제한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을 잘 이용하는 장르가스릴러다. 스릴러에서 공포를 주는 주체는 자주, 그리고 명확하게 화면에 출현시키지 않는다. 화면에 드러날 때부터 공포의 유통기한이 매겨지며, 자주 노출시킬수록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배트맨과 리들러, 둘 다 스릴러의 범인과 같은 구도로 배치한다. 이를 통해 배트맨의 공포를 설득한다. 하지만 동시에 배트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역대 배트맨 영화와 비교해, 배트맨의 정체성에 집중한 영화다. 즉, 배트맨의 내면에 관객을 감정 이입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배트맨이 화면에 자주 나타나줘야 한다. 관객은 화면 내에 있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즉, 많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주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각종 누아르 영화에서의 빛 번짐과 그림자를 활용한다. 배트맨 앞에 유리창이 가로막힌 채 카메라로 비추는 장면들이 있다. 아캄시티에 끊임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빛 번짐이 일어나고 배트맨의 모습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가 닿지 않는 실내에선 강렬한 빛으로 만들어진 부분적인 그림자로 배트맨을 가린다. 이는 가림막에 가려진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는 효과도 준다. 수수께끼와 의문이라는 주제에 맞는 표현 방식이다.
결국 ‘카메라 구도와 콘트라스트를 활용했다.’로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빛과 어둠, 그리고 시선을 인물을 표현하는 영화 기법으로만 끝내지 않고 플롯에 직접적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 두 가지를 이어주는 것이 수십 년간 쌓아온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다. 만약 영화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빛과 어둠, 그리고 공포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설득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과 악, 빛과 어둠에서 갈등하는 배트맨이기에 이 질문들을 관객들에게 던질 수 있다. 이전에 영화들에 대한 유산을 이어받는다. 그래서 영화는 배트맨의 현재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리고 배트맨의 서사를 보충하기 위해 나머지 인물들이 퍼즐의 조각처럼 활용된다. 메인 빌런인 리들러는 아치 에너미로서 주제에 대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진다. 어둠에 존재하는 캣우먼은 배트맨의 눈이 되어 배트맨이 마음 속에 품던 의문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이런 서사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배트맨에 집중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역전을 일으키는 도구적 측면에서 리들러는 유용한 캐릭터다. 리들러 자체가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니 추상적인 질문을 마음껏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가 코믹스의 캐릭터에 기대면서 추리물의 장르적 쾌감과 플롯은 약해진다. 애초에 영화는 배트맨 이외의 인물들의 서사나 입체감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빠르게 대사로 처리하고, 집요하게 배트맨을 조명한다.
배트맨 후반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배트맨 서사는 앞선 표현 방식과 맞물려 클라이막스에서 폭발한다. 그 전까지 배트맨은 리들러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리들러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며, 수수께끼에 갈등한다. 이전까지 배트맨이 받는 빛은 폭력과 불꽃에서 나오는 주황색 계열의 불빛을 받는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배트맨은 변화한다. 리들러가 배트맨을 표현한 ‘빌딩 위에 있는 고아’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다른 종류의 빛을 받으며 구도를 바꾼다. 이전까지 배트맨은 항상 관찰하는 위치인 높은 곳이나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젠 그들과 평행한 시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배트맨이 ‘복수’에서 도시의 구도자가 되었음을,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는 미장센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배트맨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물었던 질문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멋있는 화면과 배트맨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따로 분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수없이 던졌던 두려움과 정의에 관한 질문이 쌓여, 서사와 표현방식이 합일을 이룬 장면으로 표현된다.
탐정 수사물이나 히어로 영화의 측면에선 다소 아쉽고, 한 인물이 가진 고뇌에 대한 서사로는 뛰어난 작품이다. 액션은 매우 훌륭하고,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는 기대는 충분히 만족시킨다. 하지만 배트맨의 초인적인 히어로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감을 줄 수 있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첨단 제압 무기를 두른 히어로가 아니다. 죄책감를 짊어진 채 위협을 의지로 버티는 인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배트맨의 본업인 추리물의 측면에서도 흥미롭지 않다. 애초에 관객들이 아니라 배트맨 한 명을 위한 추리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앞선 두 장르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훌륭하고 음울한 성장물을 내놓는다. 그리고 성장물의 측면에서, 이 영화는 배트맨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성장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