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문장 no.1]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갑자기 치솟았던 분노를, 마치 잘 익은 과일에서 무른 껍질을 술술 벗겨내듯 쉽게 그로부터 몰아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던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아무렇지 않게 된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는 감정과 그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갑자기 ‘치솟았던’ 분노라는 표현을 통해 감정은 급격하게 상승한다. 따라서 반대되는 표현으로 “분노가 사그라졌다.” “분노가 가라앉았다.” 등의 표현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 분노가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조이스는 단순히 감정이 차올랐다가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순간을 짚어주고 있다. 게다가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그가 분노를 없애버린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우연한 힘에 의해 분노가 그로부터 멀어진다.
분명히 그가 감정을 느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주체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제삼자까지 끌어들이면서 그와 분노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마치 잘 익은 과일에서 무른 껍질을 술술 벗겨내듯'이라는 표현은 분노를 그로부터 완전히 분리한다. 그가 인생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느껴졌던 분노가 단순히 무른 과일의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싱겁고 김빠지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만큼 분노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그 순간을 명확하게 감각하고 있다.
문장 전체에서 그와 분노는 서로에게 속하지 않는 다른 존재로 어느 지점에서 맞닥뜨렸다가 다시 멀어지고 있다. 흔히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되는 감정을 타자화 시켰다는 점이 이 문장의 훌륭함이다.
감정, 특히 분노와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통제력을 잃고 감정에 좌지우지된다는 감각에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때 그 감정이 정말 별것 아니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오래 머무는 감정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강렬함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문장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은 우리가 휘두르는 것도, 우리를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잠시 어느 지점에서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도, 집착하지도 말고 정중하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것이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이야기하고 안아주자. 그래야 헤어지고 나서도 미련이 없고 다시 만났을 때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법이니까.
오늘, 나를 스쳐지나간 감정들에게 인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