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문장 no.2]
“몰리, 참 신기하지? 사랑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게 말이야. 또 만나”
-뮤지컬 <GHOST>-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GHOST>에서 남자 주인공 샘이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에게 죽음은 예외가 없는 규칙이다. 아주 작은 운이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음과 사랑은 예술이 사랑하는 주제다. 수천 년에 걸쳐 예술가들은 영화, 드라마, 책, 공연, 음악 등에서 이 두 가지 소재를 끊임없이 엮어왔다. 유한한 죽음과 무한한 사랑 혹은, 유한한 사랑과 무한한 죽음에 대한 문제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 그런 작품들을 접하면서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서 남겨진 사람과 떠나간 사람 중 누가 더 괴로울지 고민해 본다. (아직 그에 대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언제나 이별은 고통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별이 고통스럽다면 아름다운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그저 남아있는 사람들의 헛된 의미부여나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 문장은 아름다운 이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별을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랑을 간직하는 것으로 바라본다면 이별이 항상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 널리고 널린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짧은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이 문장이 인생을 바꾸는 힘을 경험했다. 함께 하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후회한다. 산책을 더 자주 갈 걸, 맛있는 걸 더 많이 줄 걸 등등 끝없는 아쉬움만이 남는다. 그러는 사이, 강아지와 함께했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은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너무나 사랑했던 강아지를 떠올릴 때마다 따스하고 애정 어린 감정보다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이 느껴진다면 나중에는 그 애를 기억하는 것조차 거부하게 되지 않을까? 그건 이별보다 더 비통한 일이다. 이 문장을 마음에 새긴 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지인을 만나면 꼭 이런 말을 해준다.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을 더 자주, 더 많이 떠올리라고. 슬픔이 찾아올 때마다 그때의 행복했던 감정을 더 많이 기억하라고. 그 아이가 너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빛나는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나도 우리 집 강아지와 그런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슬퍼하고 불안해하기보다 기쁜 순간들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한다. 이 문장을 통해 삶에서 언제나 피하고 싶었던 이별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충분히 슬퍼하되 미련과 후회보다 추억과 사랑을 간직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이별의 방식이 아닐까.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즐거운 추억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슬퍼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 일이 끝난 것에 괴로워하지 말고 그 일이 일어났음에 웃음 지어라."라는 말이 있듯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 추억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나지 않았으면 이별하지도 않았을 테니 좋았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났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에 슬퍼할 수 있는 건 인생의 빛나는 기억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마주할 이별들에서 눈물이 아닌 웃음을 남기자. 그러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해 사랑하자.
떠난 존재들과 남은 존재들 모두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