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문장 no.3]
"나는 지금도 그런 안이한 즐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즐거움을 안이하다고 일컫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기 때문일 뿐이다."
-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세실은 내가 사랑하는 소설 속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가끔 더위가 지겨워지거나 당당하고 매력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찾아간다. 그녀는 언제나 명랑하게 그 여름 속에 있다. 세실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싱그러움'이 아닐까. 청춘의 열정과 불안이 한데 모여 엄청난 광채를 뿜어낸다.
세실이 이야기하는 안이한 즐거움이란 술자리에서 농담하기, 담배 피우기, 바람둥이 신사들과 어울리기, 바다에서 해수욕하기 등이다. 내 삶의 즐거움은 책 읽기, 영화/드라마 보기, 낮잠 자기, 음악 듣기 정도다. 하나같이 한량 같은 즐거움들로 생산적인 건 하나도 없으니 안이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이지 않는 것은 현실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교양이나 여가 측면에서는 추앙받을 수 있어도, 그것을 삶의 주요한 목적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돈이 있어야만 비생산적인 즐거움들을 즐길 수 있는 역설도 존재한다.)
중학생 때 공부멘토로 유명했던 사람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을 못 봤다.'라는 말에 발끈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난 취침 시간 때문에 보지 못한 드라마를 새벽에 일어나 등교하기 전에 보고, 친구에게 시험 기간에 밀린 드라마 내용을 스포 하면 절교하겠다고 진지하게 경고하고, 마지막화를 본방사수하지 못한 게 슬퍼서 오열하고, 일일드라마부터 주말드라마까지 그 주에 방영하는 모든 드라마의 전개를 다 꿰고 있는 정도의 드라마광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보란 듯이 성공해서 드라마 보는 사람의 성공 사례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분노했다.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방영 중인 드라마의 제목과 대략적인 줄거리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나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건 내 삶의 기쁨일 뿐이다. 누군가를 납득시키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안이한 즐거움은 책 내내 이어지는 세실의 독백처럼 아주 내밀한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아주 좋아하거나 기대하는 예술 작품은 되도록 혼자 읽거나 보거나 들으려고 한다. 만약 누군가와 같이 본 영화가 좋았다면 꼭 다시 혼자 보러 간다. 오롯이 홀로 온전하게 감상했던 경험을 남겨두기 위해서다. 공유되지 않은 생각, 혼자 되뇌는 감동이 주는 충만함이 있다. 내밀한 기쁨들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 일부를 다듬어 글로 표현해 내는 즐거움이 이어진다. 이렇듯 생각과 감정이 충분한 시간을 거쳐야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만한 농도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더 확신하게 됐다. 이것저것 감상평이나 메모들을 적어놓은 파일이 많아서 글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소재를 갈아엎으며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고 세이브는 고사하고 마감일에 맞춰 글을 쓰는 것도 아슬아슬할 때가 있다.
그래서 뭐든 빠르게 새로운 것을 콘텐츠화해야 하는 세상은 조금 버겁다. 여전히 손으로 글을 쓰고 투고했던 시절을 동경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손으로 쓰면서 글을 고쳐나갈 수 있었던 시절. 컴퓨터 타자는 쓰고 지우고 전달하는 것이 과하게 편리하고 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다고 느낀다. 충분히 스스로 즐기고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언제나 과거를 부러워하는 사람으로서 살 수는 없다. 몇 백 년 뒤 누군가는 분명히 나의 시대를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세상은 진보하는 게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나대로 이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이한 즐거움을 포기하는 타협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사회가 그것이 비생산적이며 무가치하다고 말하더라도, '그래 그렇구나~'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내밀한 기쁨을 안이한 것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자신만의 내밀한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삶은 근사하고, 충분히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