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색 May 12. 2022

내 몫의 빵

학창 시절 트라우마 한 조각

참새 방아간 가 듯 들리는 집 근처 빵 맛집

집 근처, 좋은 재료와 맛으로 유명한 빵집에 갔다가 엄마와 싸웠다. 빵 하나로 시작된 정말 사소한 다툼이었다.


이사 후 종종 엄마와 함께 마실 삼아 동네 탐방 겸 주변 상가나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매장은 카페처럼 커피 등 제조 음료와 함께 빵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전문 빵집인지 빵 나오는 시간도 하루 두 번 공지돼 있었고 마침 새로 만든 빵이 잔뜩 매대에 진열되어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까지 다양한 빵부터 비스킷류, 케이크는 물론 샌드위치와 샐러드까지 냉장 보관되어있는 신선식품 등 전체 상품진열 공간이 넓은 매장의 반 이상 차지할 정도로 빵 천지였다. 빵순이의 단골 리스트에 자동 등록되는 순간이었다.


계산하는 곳 너머 주방 공간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매장 공간만큼 크고 넓었다. 빵을 만드는 모습이 훤히 다 들여다보여서 신기하고 신뢰가 갔다.


상품 진열대 위에서 어서 나를 선택하라는 듯 맛있어 보이는 자태를 뽐내고 있는 빵들은 온갖 재료와 색과 광택으로 눈이 부셨다. 고르기도 전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선택 장애를 느낄 만큼 다 맛있어 보였다.


어쨌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하며 빵을 고를 때부터 나는 내 몫의 빵을 다 먹겠다고 엄마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즉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양껏 사자고 미리 선언한 셈.


자리를 잡고 주문한 빵과 음료를 받아와 테이블에 펼쳐놓고 함께 먹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고소하고 향긋하고 달고 상큼한 맛의 향연이었다. 특히 겉바속촉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바삭바삭한 겉과 부드럽고 촉촉한 촉감의 빵이 가장 취향저격이었다.


내가 먹는 빵이 맛있어 보였는지 엄마는 내 빵도 나누어 먹자 했다. 흔히 지인들과 음식을 먹을 때 '한입만~'하는 것처럼 별생각 없이 음식 공유를 청한 것일 터였다. 그럼에도 순간 반발심이 들었다. 맛있게 먹고 있다가 양이 차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눠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일견 식탐 부리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애초에 각자 먹고 싶은 빵을 골라 양 껏 먹자고 했던 나와 달리 최대한 다양한 빵을 맛보고 싶었던 엄마와 먹을 것으로 다투다니. 참 별것도 아닌 것으로 아웅다웅하는 어린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양껏 내 몫을 온전히 먹을 수 없다는 것에 쪼잔하지만 짜증이 났다. 


나 역시 반찬 문화로 인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게 뼛속까지 각인되어있는 한국사람이기에 기본적으로 음식 공유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럼에도 최소한 내 몫으로 나온 음식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먹만 한 작은 사이즈라 하나 더 사서 드시라 했더니 엄마는 빵이 종류별로 있고 이미 둘이 먹고 남을 정도라 추가 구매는 낭비라며 그냥 모든 빵을 나누어 먹자 했다. 불만스러웠지만 결국 나눠먹어야 했고 입이 삐죽 나온 딸내미 눈치를 보는 엄마와 잠시나마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고민이 됐다. 엄마 입장에선 식탐 많은 딸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심통난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니 이대로 넘어가기엔 찝찝했다. 빵집에서 짜증 부린 것에 나름의 비하인드가 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마한테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내 몫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사연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지금까지도 나한테 안 좋은 트라우마가 됐던 경험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어리둥절한 신입생이라 새로운 환경과 규칙, 사람들에 적응하기 바빴다. 같은 과 동기라 해도 다양한 지역 출신에 나이가 다른 경우도 있어 친구 사귀기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때였다. 그러다 같이 수업을 듣는 같은 과에 나이도 같은 여자 동기와 친해져 둘이서 자주 점심을 먹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 친구에 대해 많은 것들이 흐릿해져 버린 상태지만 한 가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 매번 배가 부르다면서 식사를 시키지 않았다. 그러면 내 몫의 1인분만 시키게 되었고 막상 음식이 나오면 친구를 앞에 두고 혼자만 먹기가 뻘쭘해서 같이 먹을래 하고 권하였다. 그러면 그 친구는 내 권유에 별다른 거부 없이 함께 먹었다. 당연히 점심값은 내가 내지만 나는 언제나 1인분을 다 먹지 못한 채 항상 부족한 느낌으로 식사를 마쳐야 했다.


문제는 이게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1인분을 시켜 나눠먹는 게 일상이 되었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돌도 씹어먹는 대학 새내기가 당시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어쩌다 가끔도 아니고 매번 내가 시킨 1인분의 내 몫을 배불리 맘껏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당황스럽고 그렇게 식사를 시키지 않은 채 내 밥을 나눠 먹는 뻔뻔한 친구에게도 화가 났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는 원치 않는 음식 공유로 늘 허기져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친구가 사정이 어려워서 그런가 싶었다. 점심값이 없어서 염치없어 말 못 하고 있는 상황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옷과 가방, 들고 다니는 소지품, 사는 집, 쓰는 용돈 등을 미루어 보아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본인 입으로 잘 살고 있다고 했으니 점심값이 없는 건 분명 아니었다.


어쩌면 그 친구는 그냥 점심시간이라 식당에 함께 동행했다가 점심을 주문하지 않고 일단 음식이 나오고 내가 권하니 별생각 없이 계속 같이 먹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실은 모르겠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그 친구와 더 이상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점심을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이없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차라리 혼자 밥 먹기로 했더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젠 이름도 얼굴도 희미해질 정도로 짧은 시기 함께 했던 그 친구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나이 들어 그 시기를 돌아봤을 때 당시에 왜 그랬는지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도 못한 채 멀어진 건 나에게도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대학 신입생 때 만난 한 친구로 인해 몇 달 안 되는 짧은 시기를 내내 허기진 상태에서 보냈던 경험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두고두고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내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그 친구의 뻔뻔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도 의문일 뿐이다.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이후로 나는 내 몫의 정량은 온전히 다 받고 싶다. 아무리 양이 많아도 내가 먼저 나누지 않는 한 각자 자기 몫을 따로 먹는 게 좋다. 의례히 모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당연시하는 자체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아마도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처럼 남은 듯싶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그저 과거 어느 불편한 경험 정도로 얕잡아 보았지만 실은 여전히 살아있는 기억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때 막 고등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여전히 어리숙한 내가 겪었던 안 좋은 기억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엄마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더니 조금 속 시원하다. 대학 신입생 시절 몇 달간 부족한 식사량에도 내색하지 못하고 참고 참기만 했던 답답한 경험과 그저 이상하고 염치없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해석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미 과거에 끝나 버린 지나간 해프닝일 뿐이지만 '내 몫의 정량'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후유증이 남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불편했거나 맘 상했던 몇몇 기억들도 스쳐 지나가며 나 자신과 사람들과 주변 상황 등 전체를 조망하며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그때 심리 상태와 반응 등을 왜곡하지 않고 바로 보이해하게 되자 신발 속 모래알처럼 신경 쓰이던 미해결 감정들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제 나이 들어 식욕이 줄고 먹을 수 있는 양 자체가 줄어드어쩌면 '내 몫'이라는 것도 다 의미 없는 집착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