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블스 플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블스 플랜>은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서바이벌 게임 예능입니다.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제시된 문제를 잘 푸는 능력만큼 연합과 배신, 거짓말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죠. 플레이어 중 한 명인 곽준빈은 3일 차 게임 시작을 앞둔 상황에서 다른 참가자에게 배신하기 쉬운 사람이 누구인지 말합니다. 게임 화폐인 피스를 가장 적게 가지고 있어 앞둔 게임에서 하위권을 기록할 경우 최종 탈락하게 되는 사람들이었죠. '그 사람들 배신해서 떨어지면 안 봐도 되잖아, 생활동에서. 그래서 배신하기 쉽거든.' 저는 곽준빈의 심성이 특별히 악하다거나, 곽준빈이 처한 상황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의 생활을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투성이'라 설명하며 '반복'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배신’이 유일한 합리적인 전략임을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게임과는 달리, 반복 방식의 게임은 다수의 전략적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단순한 게임에서는 ‘협력’과 ‘배신’ 두 가지 전략만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반복 방식에서는 여러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하죠. 즉 곽준빈은 '배신하면 최종 탈락하게 되는 사람'과의 '단순한 게임'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음을 고려했던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 리처드 도킨스는 같은 책에서 반복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보복 능력이라 이야기합니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전원책의 좌파 비판 - 자유의 적들』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힘없는 나라에 평화는 없다. 국가 간에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에 기록된 모든 평화는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비평화적 방법’인 힘을 비축해서 얻은 것이다. 적의 전력과 최소한 대등한 전력을 가질 때 전쟁은 억지되고 평화는 유지된다. 이 전력이란 것은 단순히 병력과 무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도발에 언제든 응징을 가하는 힘이 바로 전력의 핵심이다." 즉, 만약 <데블스 플랜>에서 '배신하면 최종 탈락하게 되는 사람'들이 배신을 당해 최종 탈락했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배신을 당하더라도 보복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아요.
1+2. 배신을 당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나의 보복 능력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특별히 나쁜 사람일 수 있고, 상대방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도 <데블스 플랜>의 '배신하면 최종 탈락하게 되는 사람'처럼 내가 배신당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배신해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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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해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보복 능력을 갖추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러셀 로버츠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자 위대한 장점은 신뢰다.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과 관련된 경제생활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해서 얻을 이익이 나의 보복으로 입을 손해보다 훨씬 큰 상황에서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내가 상대방을 신뢰하고 있음을 상대방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