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돈케어 Sep 05. 2023

6. “정신과 약 당장 끊으세요”... 정말?

용기를 주는 마법

 "항우울제랑 항불안제는 지난번과 동일하게 처방해 드릴게요. 2주 후에 다시 뵐게요."

 "선생님, 근데 제가 계속 약을 먹어도 괜찮을까요?"

 "이번이 두 번째 공황이니 당분간은 계속 드시고, 줄이더라도 약을 천천히 줄여보는 건 어떨까 싶어요. 항불안제는 의존성이 있지만, 환자 님처럼 경계심이 높은 분들은 잘 의존하지 않습니다. 용량도 지금 최저치고요. 항불안제 드시는 분 중에 거의 열 배 되는 약을 드시는 분도 있어요. 이 정도라면 문제 되지 않을 겁니다. 항우울제는 계속 드셔도 큰 문제는 없어요."

 

 나는 이 약들에게 분명한 도움을 받았다. 즉각적으로 불안이 완화되었고, 잔잔한 불안과 긴장은 이어졌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했다. 하지만 약을 계속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강박적으로 약을 챙기는 내 모습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있었다. 증상이 전보다 나아졌다는 일종의 자신감도 들었다. 내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인터넷에 찾아봤다.




 내가 복용한 항우울제(SSRI,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행복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 없어지는 것을 막아 농도를 높인다. 항우울제가 해마의 크기를 증가시킨다는 여러 연구결과도 있다.1 항불안제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을 처방받았는데,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를 활성화하여 불안완화작용을 일으킨다.


 단,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는 단기간만 사용하도록 돼 있다. 효과는 좋은데 오래가지 않아 의존성 문제가 있다. 약 먹고 바로 불안이 사라졌는데 6시간 있다가 다시 불안이 올라오는 거다. 그러면 또 약을 찾게 되는 의존성이 생긴다.


항우울제는 필요하다면 죽을 때까지 먹어도 된다고 하긴 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임상결과가 부족하다.2 하나뿐인 내 몸뚱이를 실험대에 올리기는 싫었다. 약은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인 해답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한, 한 달 후부터 조금씩 줄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공황장애로 먹은 약들을 '용기를 주는 마법'이라 이름 붙였다. 약 덕분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 증상이 줄면서 '조금씩 약을 줄여봐도 될까?' 하는 용기를 얻었고, 약을 줄일 때 일종의 충격(쇼크)이 올 때도 있었지만 참았다. 마법은 일시적일 뿐 영원하진 않기 때문이다. 참고 용량을 줄인 상태로 먹다 보면 또 용기가 생긴다. '더 줄여도 되지 않을까?' 혹은 '이 정도면 백화점에서도 괜찮지 않을까?' 약이 준 용기 덕분에 나는 서서히 공황장애 이전으로 회복했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에서는 벤조디아제핀의 중독성이 심하다며, 복용을 당장 중단하라고 말한다. 난 그때 한참 그걸 먹고 있어서 혹시 중독된 건 아닐지 걱정했다.


공황장애에 있어 약 복용은 무조건 배제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약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활용할 수 있다. 이 약이 중독성이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복용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신 약을 줄일 충분한 용기가 생긴다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줄여보도록 하자.


 약을 줄일 때는 반 알도 좋고, 반의 반 알도 좋다. 줄이는 시점은 내가 의사와 상의를 해도 좋고, 혹은 충분히 내 증상이 나아졌다고 느꼈을 때 줄여도 좋다. 나는 약을 줄일 때 반알 씩 줄였고, 마지막엔 가장 최소용량의 절반을 한 달가량 먹었다. 의사는 최소용량 이하로 먹는 거면 바로 끊어도 좋다고 했지만, 난 혹시 모를 충격이 있을까 겁이 났다. 그래서 받은 알약을 스테이플러로 깨서 반씩 먹었다.

 

 약은 급격하게 줄이지 않더라도 약간의 충격은 있을 것이다. 내가 약을 줄였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약을 줄이고 일주일 가량은 이유 없는 불안과 초조가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 증상이 공황발작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증상이 나오면 숨을 고르고 ‘약을 줄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불안이야’ 하고 생각했다. 불안의 핑계를 대니 불안의 힘이 약해짐을 느꼈다.


약을 줄이면서 여러 가지 다른 활동들을 했다. 명상, 운동도 하고 특히 운동은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동이 가장 큰 치료효과를 줬다고 느낀다. 운동이 과연 불안장애, 공황장애에 효과가 있을지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겠다.



 1. Malberg J.E., Eisch A.J., Nestler E.J., Duman R.S. Chronic antidepressant treatment increases neurogenesis in adult rat hippocampus. J. Neurosci. 2000;20(24):9104–9110., Jayatissa M.N., Bisgaard C., Tingstrom A., Papp M., Wiborg O.,  Hippocampal cytogenesis correlates to escitalopram-mediated recovery in a chronic mild stress rat model of depression. Neuropsychopharmacology. 2006;31(11):2395–2404. 등 참고했다. 다만 이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증가시켰는지는 연구되지 않았다.

 

 2. Meshal Mosaeed Gabish et al, Role of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in anxiety disorder, International Journal of Medicine in Developing Countries, 2020;4(2):522–525.

이전 05화 5. 불안한 생각,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