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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02. 2024

칭찬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은 교회 화단 작업 일정으로 카페에 가지 못했다. 목요일마다 카페에서 발행하는 글쓰기는 홈카페에서 이어가 본다. 일단 커피 한 잔 내리고 거실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심어볼까?


글을 쓰기 전에 10분 정도 가만히 생각을 떠올려 본다. 마치 명상을 하듯 글감에 집중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오늘 떠오른 한 단어는 '칭찬'이었다. 어제의 만남을 회상하며 그리고 나의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어제는 그동안 글쓰기 모임에 오래 함께 해주신 작가님을 만났다. 작가님의 질문 세례 덕분에 마치 인터뷰를 당하는 기분을 누리며 풍성한 대화 시간을 즐겼다. 첫 만남이지만 처음 같지 않은 익숙함 속에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며 느낀 건, 퇴사 후 이것저것 경험해 본 게 참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불안감에 가려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풍요를 되새길 수 있었다. 


지금은 핵심 역량이 된 글쓰기도 시작은 그저 '할 줄 아는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진심이 된 글쓰기도 시작은 별것 아닌 계기로부터였다. 회사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부장님이 '이대리가 그래도 글은 좀 쓰니까 텍스트 작업은 이대리가 해'라고 했던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퇴사 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기억의 바닥을 긁다가 떠올린 그 칭찬 같지 않은 칭찬 한 마디가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작이었다니. 솔직히 그땐 전혀 고맙게 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 왜 나야?'라며 마음속으로 불평했는데. 정말 사람 일은 누구도 모르는 거다.


아이를 기르면 자연스레 칭찬에 헤픈 사람이 된다. 아이의 마음을 세워주고 싶기 때문이다. 근데 왜 정작 나이가 들어가면서 칭찬에 인색해졌을까? 칭찬을 건네는 것도 받는 것에도 마음이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게 새삼 안타까웠다. 사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도 칭찬이 고픈 건 매한가진데.


잘하는 건 잘한다고, 아닌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면 어땠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하면 모난 돌 취급받아 정을 맞고, 아니어도 눈감아 주거나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걸 보면서 좋은 말을 내뱉는데 인색해진 걸까?


외국 여행을 가면 카페에서나, 상점에서, 숙박업소에서, 누구에게도 쉽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그런데 정작 일상에선 얼마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살아가는지 돌이켜 본다. 뭐, 원래 한국 사람들이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고 퉁치기엔 너무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괜스레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나무를 심으며 오늘 나는 어떤 마음을 심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내가 나를 칭찬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에게 가장 인색한 건 나였으니. 그다음엔 나의 아이와 아내에게. 그리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에게. 


칭찬은 아이들을 자라나게 한다는 말은 익숙한데 왜 칭찬은 회사원을, 선생님을, 사장님을, 부모의 마음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잊어버리는 걸까. 


칭찬이 주는 삶의 풍요를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작은 것에 감동하는 아이 같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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