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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17. 2024

이게 다 날씨 탓이다

당신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불안이 있나요?


유난히 폭우가 쏟아진 하루였다. 아침부터 옴짝달싹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한가득 들게 했던 폭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필 아내는 주 1회 출근하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지금이라도 회사에 연락해 다른 날로 바꿀 수는 없는지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떨까' 싶었지만 다른 날이라고 또 비가 이렇게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그냥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아내가 집을 나서고 아이 옆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금방 1시간이 지나있었다. 다행인 건 아침나절 쏟아지던 비는 이미 그친 상태였다. 이제 아이를 준비시키고 어린이집 등원을 마쳤다. 모두가 집을 나간 고요한 집. 비는 그쳤지만 내내 어둑어둑한 하늘. 그리고 그보다 더 어두운 집. 그 속에 홀로 앉아 있는데 오늘따라 몸에 기운이 없다. 


다행히 오전에 나갔다 와야 할 일정이 취소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볼까?' 생각은 해보지만 마음은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뭘까. 대체. 오늘따라 왜 이리 마음이 불안정할까.


그래, 이게 다 날씨 때문이다. 내가 이래서 여름을 싫어한다. 


습도는 높아 밤잠을 깊이 들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낮에 어딜 가도 그 잠깐 움직이는데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 더위 탓에 평소보다 물이나 아이스커피를 더 마시다 보니 속도 좋지 않을 때가 많다. 방안에는 탁상용 선풍기 하나가 전부여서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할 때 오래 앉아있으면 허벅지부터 땀이 차 영 찝찝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일종의 낙차였다. 내일에 대한 희망과 여태 살아온 관성의 괴리로 발생하는 낙차. 


어제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강의를 듣고 난 뒤 뭔가 당장이라도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같은 게 차오르는 걸 느꼈다. 심지어 이제 겨우 2달 정도 사용한 챗GPT지만 나름 잘 사용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더욱 그랬다. 그랬는데 아침이 되면서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의 편안함을 깨지 말라며 등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손길을 느꼈다. 


축 처지는 날씨,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몸, 그리고 잔뜩 올랐다 쿵 하고 떨어진 마음. 나의 불안정한 하루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사실 이 보다 더 큰 이유는 기저에 깔려있는 불안감이라는 걸 잘 안다.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 앞에 답을 내기 위한 풀이 과정을 미루면 언제나 불안이 커진다. 그게 날씨 때문이든,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 든 간에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잠깐이라도 고개를 돌리면 불안감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잘 알기에 오래 두지는 않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함에 어딘가 찝찝함이 남는다.


제습을 아무리 해도 여전히 다 해결되지 않는 한 여름의 습도처럼.


이제 선택해야 할 때가 가까워진 듯하다.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선택의 상황이 임박한 것 같다. 과연 오래도록 젖어버린 삶과 그로 인해 밑바닥에 짙게 깔려있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도통 답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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