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랜만에 산책길을 나섰다. 한동안 지켜내지 못했던 하루아침의 루틴을 오랜만에 다시 실행에 옮겼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아침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해가 뜨는 시간도 늦어졌고, 온도는 선선해졌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어느덧 긴팔로 바뀌었다. 이른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도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차림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었다.
한껏 기분에 취해 걷다가 아주 잠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얼마 뛰지도 않았지만 금방 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온몸으로 중력을 체감하는 듯했지만 기분 좋은 숨 가쁨이었다. 숨 고르기를 하며 다시 걸었다. 겨우 20분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새롭게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에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 가장 찬물로 샤워를 했다. 찬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났는데도 여전히 몸에서 열이 식지 않았다. 문득 오래전 수영을 다닐 때가 떠올랐다. 한참 운동을 마치고 나면 물속에서도 땀이 흐르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오늘 비슷한 느낌을 다시 느꼈다.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곱씹으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그동안 얼마나 숱한 날들을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던가. 정확히 이 표현이 아닐지라도 참 많이도 하지 못할 이유를, 안될 이유를 둘러대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이 달라진 것이라고는 생각의 방향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과거에도 아침 루틴을 가지고 살았던 날들이 여러 날이었고, 책을 읽었으며 글을 썼으니까. 그럼에도 에너지의 흐름은 전혀 다름을 느낀다. 그 차이는 오로지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 것뿐이라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세상엔 부러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을 이미 잘하는 사람들. 적어도 잘한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들. 나는 늘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에게도 잘한다고 말해줬다. 그때는 그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오직 내 앞에 있는 이들을 향해 있었으니까. 저들은 늘 나보다 몇 걸음 앞에 있었으니까.
생각이 바뀌고 나서는 저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가진 걸 보게 되었다. 가진 것의 크기는 상대적일 뿐이다. 그마저도 내가 비교하지 않으면 내 크기가 전부이니 절대적이 된다.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은 '좀 더 일찍 나를 믿어 줄 걸'하는 것이다. 왜 이리도 오랜 시간 믿어주지 못하고 살았을까. 돌아보면 나도 꽤나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어찌 보면 이보다 더 강력한 스펙이 없을 텐데, 이보다 더 정직한 스펙이 없을 텐데, '성실함'을 왜 그리 쓸데없다 여겼을까. 성실함 덕분에 꾸준할 수 있고, 그 덕분에 남들보다 쉽게 해낼 수 있었던 것들도 많았는데, 그것을 왜 그리도 무가치하게 여겼던 걸까.
이제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라도 해낼 수 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아침을 부지런히 시작하니 언어가 달라지는 기분이 드는 건 그저 기분인 걸까? 이 느낌을 잘 기억하자. 나의 실행력을 높여주는 가장 큰 연료는 결국 '오늘 하루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느끼는 것'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