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현이 Mar 14. 2022

순심이의 분당 살이

할머니는 분당은 모든 것이 다 비싸고, 음식은 잔생이도 맛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할머니의 몸은 분당에 있었지만 그 마음과 삶의 모습은 순천에 있었다.  


 할머니는 메주를 담갔다.

콩을 삶고, 찌고,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방을 쿰쿰한 향으로 채웠다. 베란다에는 할머니의 장독대가 있었다. 할머니는 집안의 음식은 장맛을 보면 안다고 했다. 난 할머니의 된장보다 고깃집 쌈장을 더 좋아했다.


  할머니는 농사를 지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주말농장이라 불리는 토지에 홀로 본격적인 ‘농사 지었다. 땅을 고르고 물을 대고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며 생명을 낳았다. 하루는 할머니 밭에 구경 갔는데,  도랑을 지나며 할머니가  심은 새순들을 밟아버렸다. 할머니는 내게 소리 지르며 나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나는  울퉁불퉁한 좁은 도랑을 새순을 밟지 않고 지나는 법을 도무지   없었다.  


 할머니는 고추를 말렸다.

아파트 현관 앞에 고추를 말려 놓으면 비둘기들이 날아와 이를 쪼아 먹곤  매운맛에 배탈이 났다. 때때로 소나기가 내리면 할머니는 언니와 내게 급히 전화해  고추를 드려놓으라 재촉했다.

어린 에겐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다. 가끔 집에 사람이 없어 고추를 들여놓지 못해 비에 쫄딱 젖으면 할머니는 슬퍼했다. 나는  젖은 고추처럼 울상이 되어 속상해하는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감을 말려 곶감을 만들었다.

시골에서 보내온 감을 일일이 깎아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할머니의 곶감은 거무튀튀했고 쭈글거렸다. 백화점에서 파는 말갛고 탱글한 곶감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김치를 담갔다.

직접 키운 배추를 일일이 가르고 씻어 소금에 절였다. 우리  화장실 욕조는 할머니의 배추로 가득 찼다. 까나리 액젓을 다리고, 무채를 썰고, 방앗간에  고추를 빻고, 찹쌀풀을 끓이고, 마늘을 까고 다지고.

재료가 다져지는 소리와 짜디짠 냄새는 우리의 아파트를 장악했다.

나는 도무지  집에 편히 있을  없었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했다.

우리  베란다와 거실은 항상 화분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게발선인장을 좋아했다. 꽃이  게발선인장을 보며 할머니는 매년  되면 꽃이 피는  신기하다며, 사람보다 낫단 말을 자주 했다.

할머니는 아파트 화단에 핀 맨드라미와 채송화가 영글어낸 씨앗을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화분에 심었다. 어릴 적 나는 종종 맨바닥에 쭈그려 앉아 꽃에 영근 씨앗을 쓸어다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고향을, 땅을, 흙을 그리워했던 걸까?

우리는 도시 아파트에서 시골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할머니를 이해할  없었다.

제발   그만하고 편히 지내시라 말렸다.

우린 할머니보다 젊었고, 나이 든 몸으로 하루를 살아보지 못했고, 할머니가 될 수 없었기에 그 누구도 할머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젓갈을 많이 넣는 전라도식 김치가 점차 새우젓을 넣어 시원해지는 서울김치 맛에 가까워졌을 . 할머니는 제법 ‘분당 할머니 되었고, 분당에서의 삶에 굉장한 만족을 느꼈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이 복이 많다고. 손주들과 자식들과 함께 사는 지금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는 더 이상 순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전 06화 까지와 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