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 현지가 놀러 오기로 했다. 내 생일은 5월 말, 현지의 생일은 6월 말이어서 우리는 종종 6월 중순 즈음 만나 근황을 나누곤 한다. 어떤 생일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현지와 나눈 선물은 무엇이었나,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들어가 보니 우리는 정말 '유용한 것들'을 나누며 지내고 있었다. 바디워시, 비타민, 룸 스프레이와 같은. 이번 생일은 좀 다르면 어떨까 했다. 인근 소품샵으로 향했다.
최대한 '쓰임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제법 취향이 돋보이는 것들'을 사 주고 싶었다. 단순히 까눌레를 너무 좋아해서 만든 독립 서적인 <이거 먹을래 까눌레>와 가름끈이 달린 은은한 미소의 수제 책갈피, 생일 축하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플립북까지 골랐다. 이어 편지지에 짤막한 문장도 남겼다. 나는 요즘 퇴사한 뒤로 무용하지만 생각이 깃든 것들에 관심이 많아. 현지에게도 흥미로웠으면 좋겠다. 문장 끝에 음표 그림을 잔뜩 그리고 나니 뭔지 모르게 환한 빛으로 온몸이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에는 또다른 오랜 친구 유리가 찾아왔다. 냉장고에 있던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잘라 주었다. 우리는 케이크 몇 조각에 세 시간어치 이야기를 나누며 창작과 돈벌이에 대해 논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회사를 8시간 다녀오고 나면 내가 죽어 버리는 것 같은데, 퇴근 후에도 생생한 감각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모든 배움에는 왜 수십만 원이 들까. 하물며 비슷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소모임조차 요즘은 왜 이토록 비쌀까.
모든 것이 재화로만 굴러가는 세상이 미워서 우리는 한참 세상 탓을 하다가, 레몬과 들기름, 맛소금으로 간을 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스물하나에 같이 봤던 라라랜드 이야기를 하다가, 곧장 노트북을 펼쳐 놓고 함께 라라랜드를 다시 봤다. 유리는 스물한 살 이후로 두 번째였고, 나는 그 뒤로 수십 번을 더 보았던 영화였다. 볼 때마다 종종 이 영화를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미련이 절절해 보이는 세바스찬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감상이 달랐다.
지지고 볶으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의 가장 좋아하는 것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아가게 만든 소중한 인연. 가장 처절하던 시기에 서로를 구원한 것은 서로 뿐이었지만, 인연의 몫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마지막 세바스찬의 회상 장면이 그동안은 그렇게 미련 같았는데, 이번에는 이별에 대한 미련보다는 내 선택이 조금 달랐더라면 지금 내가 평생을 원하던 이 재즈바를 차렸을까, 그 삶이 더 행복했으려나, 하며 짧게 떠올려 보는 것처럼 보였다.
세바스찬은 그래도 어떻게든 음악이랑 닿아 있으려고 일도 그런 일들만 했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유리와 나는 스물한 살 때에는 나누지 않던 감상들을 나눴다.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닌 음악이 돈벌이가 된다면, 너는 할 거야? 하겠지. 일단 돈도 되고 비슷한 영역이니까. 오늘 보니까 왜 이렇게 가사가 마음에 콕콕 박혀? 내 말이. 날 알아봐 줄 사람 없나. 멘토 같은 사람 어디 없나.
어영부영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는 십 년 전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같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게 이날 우리의 최대 고민거리였지만, 우리가 하루를 함께 보내는 방식만큼은, 우리가 여전히 같은 굴레 안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그게 오늘 나를 참 많이 안심시켰다. 우리는 또 어떤 어른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