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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8) 엄마의 일기_1

우리에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by 송영채

2054년 12월 18일 금요일

오늘은 정말 기쁜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손 꼽을 만큼 가장 기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남편과 결혼 후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맘고생이 심했는데, 드디어 아이가 찾아와주었다.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자연 임신이 워낙 희소한데도, 우리는 대리모 인공수정이나 인공적인 유전자 편집을 거부해왔으니, 주변에선 우리가 실제로는 2세 생각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남편과 나는 계속 기도하고 노력해왔지만, 어느샌가 우리 둘도 더이상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부터 몸이 너무 무겁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찾아오리라곤 생각지 못하고, 유행하는 독감에 걸린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상이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전에야 남편에게 말을 하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결과 우리에게 아이가 진짜 찾아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남편과 나는 벅차올라서 서로 안고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민망한 마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병원에 있는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모두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아주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아이의 태명은 어떻게 할까 남편과 한참 고민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에 찾아와주었으니 ‘겨울’로 할까 했더니, 남편이 아이가 너무 추울거 같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럼 아이가 태어날 ‘여름’으로 할까? 했더니 너무 더워서 싫단다. 태명 하나 짓는 걸로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현재로서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쑥쑥 크라고 해서 ‘쑥쑥이’, 아니면 밝은 미래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희망이’, 이렇게 두가지 태명 중에서 고민 중이다.


아이야, 엄마 아빠에게 찾아와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해줄게.

건강하게 쑥쑥 크다가, 예정일이 되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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