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이 지붕까지 뒤덮은 작은 집이, 금세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숲 속을 헤매던 소년에게 그 집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고, 어디보다도 안전한 요새처럼 보였다.
‘일단 저기서 길을 다시 보고 출발해야겠다.’
‘끼익—’
소년이 손을 대자 낡은 대문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담장 안에는 생각보다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이름 모를 보라색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맑은 봄날의 공기 속에 청량하고 달콤한 향이 가득 차 있었다.
소년은 그 향을 들이마시며 걸음을 멈췄다. 투명하고 싱그러운 공기가 잠시 동안 소년의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소년은 다시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정원을 가로질러 낡은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누구 계신가요? 여기요!”
잠시의 정적 끝에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어둑한 형체가 문 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자, 소년은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한 긴 백발의 노인이 현관 안에 서 있었다.
투박한 인상의 노인은 말없이 손짓했다.
소년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그 손짓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는 오래 끓인 음식의 달큼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감자수프다.”
할아버지가 식탁 쪽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뜻밖의 환대에 소년은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이 직접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고, 누군가가 정성스레 끓인 음식을 이렇게 갑자기 마주 앉아 먹는다는 일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감자수프가 가득 담긴 그릇을 소년 앞에 내려놓았다. 검게 그을린 손엔 굳은살이 두텁게 박여 있었고, 손톱 밑엔 오래된 묵은 흙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흙이 묻은 주름진 손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년의 집에 있는 돌봄 로봇이라면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됩니다. 손 세정을 권장합니다.’라며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엔 그런 기계음도, 경고도 없었다. 오직 수프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감자수프의 달큼한 향기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소년은 문득 깨달았다 —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이 고요함이 이상하리 만큼 평온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갓 끓인 감자수프는 너무 뜨거워서, 소년은 첫 숟가락에 입천장을 살짝 데었다.
다시금 숟가락 가득 뜬 수프를 후— 불어 천천히 맛보니, 따뜻한 수프가 목구멍을 가득 감싸고 내려오며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는 동안 뜨끈한 무게가 소년의 가슴 깊은 곳까지 내려앉았다.
그릇을 거의 비워갈 무렵, 포만감과 함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가 몰려왔다.
소년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걸 느끼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딱딱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방 안은 수도사의 방처럼 간소했다. 빛이 누렇게 바랜 식물도감 몇 권이 책장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스탠드와 연필 몇 자루가 덩그러니 놓인 책상이 있었다.
책장 위쪽, 벽과 천장이 맞닿은 틈새에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소년이 살던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봄 로봇이 늘 위생 상태를 감시하고, 먼지 한 톨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미를 보고 순간 움찔했던 소년은 이내 그 장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실이 공중에 이어지며 집을 지어가는 질서 정연한 모습이 처음엔 생경하다가도, 곧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곁을 지나쳐갔다.
그렇게 방 안의 풍경을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흔한 스크린이나 전자 패드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거실로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일부러 잔기침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을 다시금 둘러보니 역사 시간에 봤던 오래된 사진 한 장 — 100년 전쯤의 어느 가정집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소년은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서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낯선 공기 속에서 팔을 위로, 그리고 옆으로 천천히 뻗으며 한참 동안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아무렇게나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소년은 오후가 저물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거실 안에서, 소년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주황빛이 거실 바닥에 길게 드리워지고,
그 빛이 서서히 어둠에게 밀려나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증발의 시대는 연재소설 입니다.
1화부터 정주행 하고 싶다면,
1장. (1) 구름을 먹는 아침 부터 읽어주세요.
매주 화,토요일 오전 7시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