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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3) 생명조작센터

by 송영채

소년은 다시 지도를 펴 들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방향을 알려주신 덕분에 소년은 한결 수월하게 숲길을 헤쳐 갈 수 있었다. 밤사이 봄비가 내렸는지 숲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소년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소년은 손목시계를 켤 수가 없었다. 손목시계를 켜는 순간 곧바로 위치가 추적되어 교정국에 잡혀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일정 시간 이상 모니터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어디선가 갑자기 교정국 사람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데려가곤 했다. 무단가출로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을 텐데, 지금 잡혀간다면 약물 교화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지금 잡히면 더 이상 X 박사를 추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시내 중심부로 심부름을 가겠다고 했을까? 한순간 소년에게 후회가 밀려왔다. 감시도 통제도 없는 할아버지 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경계가 느슨해졌던 걸까. 아니면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내어준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었을까. 혹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그에게 느낀 측은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주신 화분을 그냥 숲길에 버리고 X 박사를 찾아갈까 하는 생각이 소년의 뇌리를 잠시 스쳤다. 하지만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분을 바짝 끌어안았다. 이유가 명확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X 박사를 찾는 일만큼 이 화분의 주인을 찾아주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숲과 도시의 경계에 어렵지 않게 다다른 소년은, 우선 외투 안에 화분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분을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내에 들어서자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소년은 곧 보건국 건물 앞에 도착했다. 보건국에 들어선 소년은 1층에 위치한 안내 로봇에게 다가갔다.


“유현 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을 하셨나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전해드릴 화분이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로봇은 잠시 신호를 송수신하더니, 소년에게 말했다.

“화분이라고 하셨죠?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소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12층에서 내렸다. 잠시 후 소년이 서 있는 쪽으로 한 남성이 다가왔다.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과는 달리, 티 없이 깨끗한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였다. 흰 가운의 가슴팍에는 ‘생명조작센터 센터장 유현’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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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셨죠?”
유현 박사는 소년의 빈손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아, 제가 숲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께서…”

그제야 소년은 자신이 그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 화분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소년은 재킷 안에 숨겨 두었던 화분을 꺼내며 말했다.


소복이 피어난 보라색 꽃송이를 본 남성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춤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방으로 가시지요. 이쪽으로 오세요.”


유현 박사의 방에는 유전자 리스트와 DNA 시퀀스가 출력된 종이, 그리고 여러 장의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리고 박사의 책상 위에는 소년의 허리 정도 높이의 인간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에는 ‘Neo-Sapien v.2.7’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년은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며 말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있어요.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몸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유전자였나?”


“맞아요. 아, 나이가 좀 어려 보이는데 편하게 말해도 될까?

새로 시작할 연구에서 테스트할 유전자 지도를 개발 중이란다. ”
유현 박사가 선생님 같은 말투로 설명을 하며 모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우리 센터에서 연구·개발한, 현재로서는 가장 완벽한 인간형—‘네오 사피엔 2.7 버전’이야. 곧 태어날 예정이지.”

박사는 인간 모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완벽한 인간이요?”

“그래. 알다시피 인간은 너무 많은 결함을 지닌 존재야. 신체도, 정신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강하면서도 폭력성이 적은 유전자들로 조합해 만들었다. 물론 지능도 가능한 한 최고 수준으로 설계했지.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증명할 날이 머지않았어. 오류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동물 실험 단계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쳤지.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확신하고 있다.”


“그렇군요. 아, 여기요. 제가 화분을 아직 못 드렸네요.”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박사가 소년의 손에 들린 화분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유현 박사는 손을 더듬어 겨우 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리곤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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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