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깊은 불안의 근원이 어딘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2.
소로우는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가난한 생활이라는 말보다는 소박한 생활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했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이제 소박한 생활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뜻하는 것을 넘어서 생태적인 생활을 뜻하며, 다가올 미래가 요구하는 생활상이다. 소비는 필연적으로 자원 착취를 동반한다. 그것이 아무리 생분해 가능한 물건들로만 만들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연이 재생되는 속도보다 소비하는 속도가 더 빠를 때, 그러한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가령 비닐봉지를 탄생시킨 것도 종이봉투를 만들기 위해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우려한 한 공학자였다. 튼튼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봉투를 만들면 환경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비주의와 맞물려 한번 쓰고 버려지며 바다로 떠내려가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었다. 그 반대로 환경을 생각한다는 상점에서는 종이봉투가 다시 쓰이고 있는데, 그 많은 종이봉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3.
새 버스를 탔을 때 나는 의자시트 냄새, 비건 옵션이 있는 카레집에서 나는 소고기 굽는 냄새, 피할 길 없는 좁은 골목에서 뿜어내는 중년 남성의 담배 냄새.
타자의 세계. 꺼림칙함. 불쾌함. 역함.
4.
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 한때 나의 동료였기도 한 그의 동료들을 만났다. 어느덧 서너 살이 되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다수 보인다. 이 집단의 출산율은 1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시의 출산율은 0.5명대. 낯선 세상 속 사람들.
같은 날 오후, 퀴어 축제에 갔다. '이케아코리아' 부스가 눈에 띈다. 무지개색 가방을 나눠준다. 그 회사에 다닐 때조차 몰랐는데 알고 보니 매년 있었다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집단의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은 역설 같지만 내가 볼 때는 자연스럽다.
특별함이 배제받지 않는 안전한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욕망.
5.
단골 김밥집에 갔다. 김밥 말아주는 아주머니가 또 바뀌었다.
"유부김밥 한 줄에 햄, 계란, 어묵은 빼주세요."
"네, 근데... 유부가 짜져서 많이 못 넣어줘요."
"아..."
잠시 침묵.
"그럼 다른 야채들이라도 많이 넣어주세요."
아주머니는 김밥을 말며 혼잣말로 궁시렁거린다.
"덩어리 있는 걸 다 빼서 어떡하란겨..."
이전에는 같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너무 바쁜 시간에는 그렇게 못 해줘요."
"저 여기서 항상 이렇게 먹었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안 바쁠 땐 몰라도 바쁠 땐 못 해준다고..."
물가 상승이 부른 야박함일까.
유부를 짜게 만들어서 덜 넣으려는 방법은 신박했다. 많이 넣기 싫어서 지어낸 거짓말로 생각했는데, 진짜 짰다.
이전에 일하시던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햄, 계란, 어묵 빼고. 맞죠?'라며 알아서 척척 해주셨다.
앞으로 계속해서 마주해야 할
불편함의 표출에 대한 불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