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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Sep 27. 2024

'우울이'와 '짜증이'의 만남

세 번째로 싸우지 않기 위한 단계는 '문제의 인식과 인정'이었다.



내가 전업주부할 때였다. 아들이 감정을 잘 다루었으면 하는 마음에 감정카드를 샀다. 딱 한번 자기 전에 누워서 사용해 보고 지금은 저게 어딨는지 모른다. 그 후로 1년 넘도록 한 번도 안 썼다. 자신이 부모이고 감정카드 구매자라면, 카드를 반복해서 쓰고 계신지 묻고 싶다. 혹시 나처럼 한두 번 쓰고 안 썼다면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부모인 자신도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아는 사람이, 또 잘 처리해 본 사람이 감정카드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내가 내 감정도 모르는 데 어떻게 자녀감정을 돌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줄곧 우울하다. 어떤 사람은 줄곧 의기소침하다. 어떤 사람은 줄곧 밝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즉시 떠오르는 감정, 그것을 나는 '지배감정'이라고 부른다. 가정예배를 통해 우리는 매일 육아를 통해 느끼는 '감정'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다.


"자기.. 만성 우울증인 거 같아."


어느 날, 가정예배를 마칠 때쯤,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불쑥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 만성 우울증인 거 같아. 내가 도와줄게, 우리 같이 기도하자"


차분한 어조로 말했던 것 같다. 내 진심을 느꼈는지 아내는 불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아내의 경우 자살 표현이라던지 하는 심각한 행동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연중 기분이 좋은 날들을 보기 힘들다는 면에서 "만성적으로 우울해 보인다"가 비전문가인 내가 내뱉을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넌 우울증이야!"라는 식의 진단을 내리는 듯한 느낌을 줘서는 안 됐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는 게 없어 '우울감이 있는 사람'을 '우울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우울증 자가치료 명서인 '필링굿(데이비드 번스, 스탠퍼드대 정신의학 교수)'이라는 책을 보니, 우울증 중에는 '기분부전 장애'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기분이 쉽게 전환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Ⅳ)에서는 "기분부전장애는 성인은 최소 2년 이상 우울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고, 식욕부진 또는 과다, 불면 또는 수면과다, 기력저하 및 피로감, 자존감 저하, 집중력 감소 또는 결정의 어려움, 절망감과 같은 증상 중 최소 2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특징"으로 본다.


그때까지 아내와 거의 8년을 살았다. 하지만 아내가 기분이 좋은 상태인 날들을 거의 보지 못했었다. 그 책에 나오는 우울증 자가진단표를 체크해 보니 아내는 중증, 나는 경증 우울증으로 나왔었다.

 

이 책에 따르면 부정적 사고를 하게 하는 '인지왜곡 증상'이 우울증에 이르게 하는 데, 아내의 경우 대표적인 '10가지 인지왜곡'을 다 하고 있었다.  


*10가지 인지왜곡 : 사람이 최선을 다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현상들을 정리한 것이다. 글 하단 참조.

 

감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되면 '장애'라는 말이 붙는다 분노조절장애, 기분부전장애, 주의집중력장애,불안장애, '장애'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어감 때문에 자신에게 감정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내는 나의 의견과 책을 통해 자신의 지배 감정이 우울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자신의 자녀에게 전이가 될 수 있음도 인정했다.


"제발 짜증 좀 안내면 좋겠어!"


아내의 지배감정이 우울이라면 나는 '분노'였다. 아내는 나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냐고 물어보면


"제발 짜증 좀 안내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짜증이 잦았다. 실망스러운 일 앞에 번번이 짜증을 냈다. 인상을 쓰고, 사사건건 따져대곤 했다. 힘없는 아이들한테 큰 소리도 질렀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 사람들은 바짝 얼수 밖에 없었다.


목이 아플 정도 소리를 지르고 나면 마음이 찝찝했다. 그럼에도 날 키워 준 아빠처럼 때리지는 않았으니 나 정도면 괜찮은 아빠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이것이 잘 못되었다고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감정이 약한 아들 덕분에 책을 많이 읽었고, 마음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방법으로 자녀를 훈육하지 마라고 하길래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짜증 나고 화내는 것은 내 문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해도 두 번 세 번 안아주고 설명해줘야 한다."

"한숨 쉬지 말자"


약 백일 동안 '하지 말기 리스트'를 썼다. 그렇게 인식하고 노트를 매일 쓰니, 소리 지르지 않는 것이 가능해져 갔다. 아이 때문에 고쳤는데, 아내한테도 내 태도가 부드러워져 감을 느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람 자체를 변화시켜 버렸다.


그렇게 '우울이'와 '짜증이'는 같이 사는 데 서로를 힘들게 하는 "자신에게 문제가있음을 인정했다."


이 인정으로 우리의 관계는 더 강해졌다.



 -계속 -



* 참고: 10가지 인지왜곡(출처: 필링굿, 데이비드 번서, 아름드리 미디어)


1.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

전 과목 A를 받다가 한과목서 B를 받은 학생이 이제 다 망쳤다고 말하는 경우 등

실수나 오점은 자신이 완전한 실패자이며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함


2. 지나친 일반화

한번 일어난 일이 계속 되풀이해 일어날 거라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그 일들은 불쾌한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 된다.


예를 들면,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했다가 거절당할 경우 "누가 나 같은 놈하고 데이트를 하겠어. 난 평생 외로울 거야"라고 결론을 내림


3. 정신적 여과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적인 면만 골라 그것만 염두에 둠으로써 전체 상황을 부정적으로 지각하는 것


4. 긍정적인 것 인정하지 않기

누군가 용모나 해낸 일을 칭찬할 때 우리는 자동으로 이렇게 되뇌곤 한다"으레 하는 인사일 뿐인데, 뭘"

인지 왜곡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유형


5. 비약으로 결론 내리기

1) 독심술의 오류 : 다른 사람이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가정을 세워 놓고 따져보지 않고 확신

2) 점쟁이 오류 : 마치 수정 구슬을 가지고 오직 나쁜 예언만 하는 것


6. 침소봉대 또는 과소평가

자신의 실수나 타인의 성과는 중요성을 과장하고, 자신의 장점이나 타인의 결함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평가


7. 감정적 추론

자기의 부정적 감정이 실제 현실을 반드시 반영한다고 가정한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러므로 그것은 틀림없이 사실이다"


8. 해야 한다식 사고

해야 한다 혹은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한다. 자신은 채찍질을 당하거나 혼이 나야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9 낙인찍기

지나친 일반화의 극단적 형태. 자기 결점을 그대로 바라보는 대신 부정적 낙인을 스스로 찍는다. '나는 실패자야' 타인의 행동이 거슬리면 ' 저 녀석은 한심한 낙오자야'라고 평가함


10. 개인화

자신과 무관하게 발생한 부정적 사건에 대해, 실제로는 자신의 책임이 별로 없는데도 자기가 원인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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