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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Jun 09. 2024

집이라는 보금자리

세상 어떤 신혼집과도 다른 우리의 신혼집

결혼을 계획 중이라면, 준비할 게 산더미처럼 많고, 또 중요한 것도 많겠지만

아마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몇 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한 가지는 바로 "함께 살아갈 집"이다.

그 때문인지 결혼을 준비하며 청첩장 모임을 할 때면,

흔하게 받는 질문이 바로 이 함께 살아갈 집은 어디로 구했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꿈꾸면서도 그걸 현실로 옮기려 용기를 내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집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이 그렇다.

이제 함께 살아갈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보금자리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저 높은 곳에 지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난 참 감사하게도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레 생략되었다.

나의 직업은 목회자이다.

목회자는 교회에 취업했다고 하지 않고, 교회에서 청빙 받았다는 말을 사용한다.

교회의 부름을 받아 그 교회에서 시무한다.라는 뜻이지만,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선 취업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진 않다.


난 이번 연도에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왔고, 서울 한 교회에서 청빙을 받았다.

그리고 청빙을 받았다는 것은 그 교회에서 내가 지낼 집을 마련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머물 집을 흔히 "사택"이라고 부른다.


요즘 같은 시대에선 집이 제공된다는 점이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거기엔 당연한 조건이 붙는다.

교회에서 마련해 준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이 얼마나 낡았든, 또 얼마나 작든 또 어떠한 형태이든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게 싫다면, 본인의 역량으로 다른 집을 구하면 되지만,

그것 역시 경제적으로나, 목회적으로나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미 청빙이 어느 정도 결정 난 상태에서 사택을 볼 수 있었고,

사택의 상태를 보고 그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이제 막 목사 안수를 받은 새내기 목사가

사택의 상태를 보고 그 교회에 갈지 말지 결정한다는 것은

낡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건방져 보일 수 있으며, 목회자로서도 그리 옳은 행동은 아니다.


 내게 제공된 사택은 내 눈엔 괜찮았다.

적당한 크기의 투 룸, 적당히 세월의 때가 묻어있는 집이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사택이 아파트나, 주택이 아닌 교회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엔 이제 같이 시무하게 될 새로운 부목사님이 살게 될 거라는 점.

그래서 실제로 내 거주 주소는 00교회 몇 층 몇 호 이렇게 되어있다.

집에 들어갈 땐 교회로 들어가야 하고,

층에 도착해선 다시 한번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긴 복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 복도에 내가 사는 집, 그리고 그 옆엔 함께 일하는 부목사 사택이 있다.

처음엔 마음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귀여운 고민이지만,

그럼 난 집들이하면, 교회로 사람들을 불러야 하는 건가?

직장 상사랑 바로 옆집에 사는 건데 괜찮을까?

퇴근 후에도 퇴근 못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결혼할 예비 신부가 이 집이 맘에 안 들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이 계속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이런 고민은 길어져 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기에, 당장 예비 신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집을 먼저 보여주었다.

사진도 찍었다.

의외로 여자친구의 반응은 덤덤했다.

"괜찮은데? 직접 가서 한 번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실제로 집을 본 여자친구는 괜찮다는 반응 외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정도면 문제없지. 정도의 반응이랄까?

어쩌면 나보다 여자친구가 더 목회자다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수긍하며 살아가는 것.

목회자의 딸로 자라와서 그런지 그러한 당연하지 않은 감사함이 삶에 녹아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삶에서 꼭 필요한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니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리되니 마지막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동생. 문제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신혼집에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내 동생.

처음엔 작은 방을 내주었다.

작은 방을 내어주니 투룸에 짐이 넘쳐 정리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린 그래도 또 그런대로 셋이 잘도 웃으며 살았다.

오히려 내 걱정과 반대로 너무 잘 어울리는 여자친구와 동생.

그 역시 감사라는 단어 외엔 표현이 불가하다.


 나의 감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는 꼭대기 층 공동철문을 열면 복도에 총 네 개의 문이 있다.

즉, 방이 4개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는 내가 사는 사택, 다른 두 곳은 부목사님 사택.

식구가 많은 부목사님이 두 방을 쓰시기로 했고, 그럼 원룸 작은 방이 하나 비어있었다.


게스트룸으로 쓸 예정으로 비워놨다는데, 사실상 낡고 좁아서 비어져있는 방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그 방을 제 동생이 좀 사용해도 되겠냐는 나의 요청에

쉽지 않았지만, 결국엔 교회에서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신혼집은 투룸짜리 방, 그리고 복도를 건너 원룸짜리 동생 방.

이렇게 구성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집의 구조에 관해 물어볼 땐 설명하는 데 꽤나 오래 걸리지만,

결론은 참 감사하게도 잘 살고 있고, 우린 모두 만족하고 있어.

나중에 집들이해서 초대할게.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

참 어찌 보면 작고, 불편한 집.

또 세상에서 집이라 표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구성이 되어있다.

하지만 변치 않는 건, 이곳을 우린 보금자리로 잘 가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금자리의 사전적 정의는 지내기에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지내는 사택은 말 그대로 우리만의 보금자리이다.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서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족의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끼는 곳.

들어오면 편히 쉴 수 있고, 함께 웃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곳.

그러한 곳이다.


집이 보금자리로 느껴지게 하는 것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집의 평수나 구조, 또 언제 지어졌는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수임을 깨닫는다.

아무리 넓은 집이어도, 아무리 새로 지어진 집이어도

분명히 부족함은 있을 수 있고, 또 어디선가 보기 싫은 벌레는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한탄하고, 불평만 가득하다면 그 집은 더 이상 보금자리가 되기 어렵다.

반대로 어떠한 집이라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또 함께 채워갈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보금자리 아닐까?



세상 어떤 신혼집과도 다른 우리의 신혼집.

그곳에 냉장고, 세탁기, 식탁 등등 많은 것을 채웠고, 여전히 채워가고 있다.

그보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마음에 행복과 감사를 채우고 있으니

세상 어떤 신혼집보다 행복한 우리의 보금자리이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신혼집에 셋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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