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밭 노순호 대표
얼마 전 비누회사 광고를 보고 매우 감동을 받을 적이 있다. 장애인의 가운데 글자를 지우니 장○인이 되었고 직관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만든 비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동구밭은 성인발달장애인을 고용해서 고체 형태의 비누나 샴푸바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의 문제를 지속가능하게 해결해 나가면서 사회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직을 말하는데 동구밭의 시작은 노순호 대표의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생인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강요받은 학창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20년 남짓의 삶이 1시간 이야깃거리도 안된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로만 채워져 있는 빈껍데기 같은 삶이라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은 10대 발달장애인과 함께 텃밭에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직업을 갖기 힘든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쳐보자는 포부로 시작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농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이 밭에 오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부모의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친구였다. 발달장애인 3명 중 2명은 친구가 없어 사회성을 배워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게 동그라미라는 친구가 있었듯이 발달장애인에게도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2015년 소셜벤처 동구밭을 창업했다. 텃밭가꾸기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키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이들에게 1명의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과 참가비만으로는 사업이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장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고객의 만족감을 높여야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비즈니스의 방향을 변경해야 했다.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문제해결과 기업의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매출을 만들어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고, 제조 아이템을 정하기 위한 기준을 네 가지로 정했다.
첫째, 발달장애인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둘째, 생산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셋째. 텃밭 농작물보다 유통기한이 길어야 한다.
넷째, 해당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정해진 아이템이 친환경 수제비누였고 기술 개발에 매진했지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버려진 비누는 20만 개에 달했지만 될 때까지 해보자는 독기로 달려든 동료들과 함께 힘을 보태니 결국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세플라스틱,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친환경과 천연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선호도 한몫했다. 친환경제품이라 안전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동구밭은 2022년 기준 130억 원 매출을 이루어낼 정도로 성장했는데 이것은 고객이 선의를 베풀어 이루어낸 결과는 결코 아니다. 매출이 늘어갈 때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늘리고, 제품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생산하는 절대 원칙을 지켜낸 데서 온 결과였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 수익을 창출하는 것. 욕심처럼 보이는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대표와 함께 힘을 보태어준 동료, 그를 지지해 주는 투자사의 존재 덕이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 혼자서는 해내기 힘들어도 함께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힘들 때 나의 손을 잡아줄 동료와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는 단순히 눈앞에 이익만을 쫒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사회의 변화를 시도하는 혁신가가 많은 사회에 희망적인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소셜벤처 :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가에 의해 설립된 기업 또는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