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조금씩 자라는 중입니다.
나는 그 회사를 그만 두면 정말 속이 시원해서 웃음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을 걸어 나오며, 경비실을 통과하는 그 짧은 순간 지난 9년간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그만 울음이 터졌다. 짐을 대충 던져놓고 차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이 멈출 때까지 그냥 엉엉 울었다. 미워도 했지만, 미운만큼 정도 많이 든 회사였다.
내가 회사에 입사할 당시엔 업계 내에서만 조금 알려진, 몇 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는 소규모 회사였다.
회사 전체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의 비율이 9:1쯤 되었는데, 엔지니어 직군에서는 여직원이 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한 번은 공장에 현장 실습이 있었다. 현장에 들어가려면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여직원용 옷이 없어 현장에 직원들이 입던 커다란 작업복을 입고 엉거주춤하게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당시 이사님께서 내게 그 작업복을 전해 준 대리님을 따로 불러 혼냈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여직원한테 그런 옷을 주면 어떡하냐고, 그 대리님은 내가 퇴사할 때까지 본인도 여직원이 처음이라 몰랐다며 그 일을 두고두고 미안해하셨다. 여자라서 일 못한다, 괜히 뽑았다는 말은 듣기 싫어, 얼굴 두껍게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가끔은 외롭고 힘에 부쳐서 계단에 숨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나를 불편해하고 의심하던 선배들도 여자 후배가 아닌 그냥 후배로 인정을 해주었고, 그렇게 도무지 적응되지 않던 그 회사 생활에 적응을 했다. 내가 쏟은 시간만큼 회사도 조금씩 성장을 했다. 성장하는 만큼 업무량은 늘고, 하루하루 바빴지만 그래도 일을 통해 얻는 인정이 좋아 열심히 일했다. 특히 출하 물량이 많아 공장에 재고가 텅 빌 정도가 되면 진짜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육아를 결정하면서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육아가 힘들게 느껴질 때,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 말고, 나의 이름, 나의 직급 ㅇㅇㅇ과장으로 불리던 그때가 그리웠다. 그 마음을 다잡기가 힘이 들어 가끔 걸려오는 옛 동료들의 안부전화에 전해 듣는 소식 외엔, 일부러 회사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 보거나 굳이 알려 노력하지 않았다. 들려온 소식은 내가 근무했었던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회사는 성장했고, 근무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여직원 비율도 많이 늘어서 일하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주식시장에서 가장 관심받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회사가 잘될수록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비상금을 털어 그 회사의 주식을 아주 조금 샀다. 과거의 나의 청춘과 노력 현재의 나의 돈을 투자했으니, 이 회사는 더 잘되야한다 라는 마음으로.
나를 울고 웃게 했던 전 직장 앞으로 내가 얼마나 잘되는지 지켜볼 거다. 잘되야 내가 뿌듯하기라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