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하루아침에 나를 부르는 호칭이 ㅇㅇ산모님이 되었다. 이 호칭이 정말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호칭 변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시 병실에 누워 쉬고 하는데, 간호실에서 나를 부르는 전화가 온다. 수유를 하러 오겠냐는 전화였다. 일단 아이를 볼 수 있다고 하니, 뭔지도 모른 채 엉거주춤 내려갔다. 속싸개에 꽁꽁 싸여있는 봄이를 만났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나와 같은 병원복을 입은 대여섯 명의 엄마들이 하나같이 앞섶을 풀어헤친 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정말 생경한 풍경이었다. 모유수유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대충 빈자리에 앉아서 곁눈질로 옆 사람이 하는 것을 대충 따라 해 본다. 불편했는지 아이가 울고, 간호사님이 나오셔서 아이를 데려가시며 분유를 먹이겠다고 이제 올라가도 된다고 하신다. 뭐가 뭔지 그렇게 엄마 모드로 전환이 된 것이 확 느껴졌다.
그렇게 조리원에서 2주의 시간을 지나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이후에는 산후도우미 이모님께서 2주간 오시기로 하셔서 초보 엄마의 걱정을 좀 덜어 내는 듯했다. 뭐든 어설픈 나에 비해 이모님은 아이 케어도, 틈틈이 집안일까지 척척 이셨다. 그러길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쿵.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모님의 한마디에 한방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그때 당시의 나는 산후 우울과 내 맘 같이 않은 내 몸상태로 거의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누가 한마디만 하면 눈물 바람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냥 어른 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더군다나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대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내가 말을 안 걸면 애가 발달이 늦다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진짜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참 열심히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정말 할 말이 없을 땐 책도 혼자 읽어주고, 그것도 안될 땐 라디오라도 틀어두었다. 50일도 안된 아이를 곁에 두고 밤마다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책과 교구, 장난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너무 비싼 유명 전집들은 중고마켓에 알람을 걸어 두었다가, 구하기도 했다. 이게 왜 이렇게 유명한 거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좋다니까 유명하다니까 그저 열심히 해보는 수 밖엔 없었다. 이렇게 힘이 잔뜩 들어가니, 아이가 예쁘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다.
엄마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몸도 마음도 가장 힘든 엄마에게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너무 가혹한 말을 많이 듣는다. 엄마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말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사고, 육아서를 뒤지고, 맘 카페를 검색하며 조금이라도 불안의 틈을 메꾸려 했다.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생기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덤이었다. 그러다 만난 책 한 권에서 그동안 나를 누르고 있던 답답함을 해소해 주는 구절을 만났다.
"진짜 엄마를 숨기고 수다쟁이 흉내를 내니 최악이고, 자기 말을 안 하고 남이 시킨 어색한 말 하려고 하니 최악이고, 말할 때 '언어력'과 '발달'이라는 숨은 의도를 갖고 하니 최악이고, 자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파괴하니 최악이다." -엄마 심리 수업 2. 윤우상-
엄마 심리 수업 2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건네었던 한마디에서 시작된 엄청난 부담감과 죄책감이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수다쟁이 엄마인 척하는 것이 더 좋지 않다고 한다. 엄마 그대로의 모습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냥 하루 삼시세끼 밥 차려 먹이고, 재밌게 보내는 하루만으로도 어떤 날은 육아가 힘에 부치고 바쁜데,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해야 한다는 여러 조언들, 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요구하는 분위기에 내가 못 미칠 때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얻는 게 참 불편하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매일 조금씩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아가는 그런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