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호랭이 Nov 27. 2021

나는 나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엄마도 조금씩 자라는 중입니다.

오늘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만난 몇 명의 사람들이 한 시간여의 짧은 시간 동안 가슴속에 있던 각자의 상처를 꺼내놓게 되었다.  세상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그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며 위로받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이곳에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 놓고 싶어졌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이혼을 하셨다.  이후로는 결혼해서 독립하기 이전까지 아빠와 함께 살았다. 아빠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장사가 잘되면 기분이 좋아서 , 장사가 안되면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1년에 365일을 매일 술에 취해 술기운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그것도 키워야 할 아읻가 둘이나 있는 아빠의 삶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대상이 술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술에 취해 모든일을 대하는 아빠가 창피했다.  하루만이라도 술에 취하지 않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이는  소원일 정도였다. 대학 진로에 대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다음날 아빠는 나와의 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때문에 일어난 그간의 사건사고들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정말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아빠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만 하셨다. 우리가 본인의 의견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윽박을 질렀다. 그리고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아빠도 우리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와 연락이 끊어진 엄마,  술에 취한 무서운 아빠와 사는 나와  동생은  결핍이  아이들이었다. 할머니가 빈자리를 채워주시려 노력했지만, 그러기엔 할머니는 너무 연로하시고 할머니 또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다. 대단한걸 바란  아니었다. 그저  하루 끝에 돌아온 집에서 사소한 일과를 나누고 웃을 가족이 필요했는데, 그럴 상대가 없었다.


난 늘 외로운 힘없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지 않느냐고 세상사람들이 다 힘들다고 술에 빠져 살진 않는다고자식들 앞에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냐고 아빠에게  번도 따져 묻지 못했다. 아빠너무 무서웠고, 나의 얘기는 듣지 않고, 끊임없이 본인 이야기만 쏟아내는 아빠와 싸우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손자가 보고 싶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영상통화를 하고 사진 보내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는데, 이상하게 나는 아빠를 보며 마음에 불이 올라왔다. 그때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하루를 견디는  버거울 만큼 산후우울이 심했고,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졌다. 아이는 예뻤지만 그렇다고 나의 아픔이 덜어들진 않았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내버려 뒀으면서 갑자기 손자에게 세상 다정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아빠가 낯설고 밉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지없이 영상통화가  어느 , 처음으로 아빠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렀다.  지금 너무나 힘들다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냐고 우리는 늘 방치하고 세상 불쌍한 아이들로 크게 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좋은 할아버지는 되고 싶으시냐고. 최대한 상처받을만한 날카롭고 못된말만 골라서 쏟아내었다. 내가 여유가 되면 먼저 전화든 사진을 보낼 테니  이상 강요하지 마시라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근댔지만 내가 살아야 했기에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시간 지나도 나의 행동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영상통화와 사진 요구는 오지만 내가 여유가  때면 전화를 받고, 받고 싶지 않으면 며칠이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진도 어쩌다 생각나면 가끔 보내는 정도였다. 아빠도 더이상 강요는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에게 나의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빠마저 우리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아빠의 부당한 말과 행동에도 나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때 난 그저 힘없고 외로운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이젠 내가 지켜야 할 나의 아이가 있고, 손잡고 함께 갈 남편이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씩 독립이라는 것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그런 모습으로 살아온 아빠에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그냥 아빠의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대신 내가 변하기로 했다. 또다시 부딪힐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피하지 않고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내가 사니까.




나는 나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내 안에 상처 받은 힘없고 외로운 어린아이와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