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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메아리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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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25. 2022

행복의 진화

행복의 변화

가난했던 옛날에는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게 가장 큰 행복이었고 쌀밥에 고깃국, 조기구이를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는 사회 전체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이 행복의 첫째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일률적인 척도가 없는 감정이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행복의 개념도 변하는 사유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욕구가 진화하는 까닭이며 추구하는 가치 또한 향상되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느끼는 정서가 다르듯 행복의  가치 내면의 성장과 함께 변화하는 것으로 자신의 현실과 추구하는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지수가 다름 아닌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따뜻한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며 마음이 편하고 걱정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 정의하는데 누구나 공감이 가능하지만 행복이 아무리 마음에서 비롯되는 감정일지라도 열약한 환경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노숙자나 최하의 빈민층을 제외하면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더라도 매달 월세를 내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가야 하는 걱정을 하며 다니는 직장에서 언제 감원이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면 마음이 편할 새가 없고 수입은 그대로인데 오르는 물가에 먹고사는데 급급한 일상 속에 불투명한 내일을 생각하면 행복이란 딴 세상 사람들의 사치라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행복은 단지 편안한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후 느끼는 안도감이나 욕구가 충족되는 만족감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 행복이며 행복은 잠시 왔다가는 일시적인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마다 가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로 행복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내릴 수 없지만 변화무쌍한 인간의 감정은 기쁨도 슬픔도 지속되지 않는 까닭에 영위할 수 있는 만족이란 결코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개념은 아니다.

대다수의 관점과 긍정과 부정의 기준에 따라 형성되는 가치관은 현재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척도가 되고 추구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힘겨운 오늘을 견딜 수 있는 것이며 생사고락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어려웠던 시절 인간의 기본 생활이 충족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면 물질적 풍요가 행복이 조건이라 여길 수 있지만 외형의 가치는 내면의 만족을 주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소유의 양과 행복의 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오늘날 모든 게 풍족한 시대에는 재난이나 변수가 없다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산물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국경이 없고 패션의 취향은 선택하기 힘들 정도이며 헤아릴 수 없는 문화의 혜택도 범람하고 있다.

어느 정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오감을 만족시키는 문명의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획일화된 세상은 다양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취향마저 획일화된 트렌드로 동일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이 증가하는 것으로 현대사회가 만든 대다수의 일상이 공통적인 유행의 기류 속에 모두가 동일화된 가치를 추구하고 비슷한 목적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현대인의 평균적인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다.    

꼭 같은 스케줄에 맞춰진 일과 속에 국경이 없는 유행을 따르며 세계인들은 꼭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고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를 본다.

몸에 좋은 건강식은 세계인의 동일한 관심사이며 미국이나 유럽의 인기 상품이 방송으로 전파를 타면 태평양을 건너 유통되는데 며칠밖에 걸리지 않고 할리우드 스타가 입은 옷은 세계 백화점 쇼윈도를 똑 같이 장식한다.

대기업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대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면서 승진이 되고 좀 더 많은 수입을 희망하는 생활이 규모만 다를 뿐 현대인의 꼭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카드 한도액은 차이가 있고 수입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화도 그림의 떡이며 새로운 트렌트와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고가 문화의 향유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유행하는 문화의 주역으로 사는 것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러한 소유의 차이는 행복의 개념을 정형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행복은 소유의 양과 비례하는 가치는 아니라 해도 소박한 만족을 가로막는  장애는 다름 아닌 비교의 가치이며 인터넷 시대의 견물생심은 대다수의 만족지수를 상실시키는 작용을 한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유행과 문화는 여러 채널을 통해 쉽게 접하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구경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초라한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다면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사실 행복이란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은 결코 아니며 대단한 일의 만족에서 비롯되는 산물도 아니다.

행복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사랑을 주고받는 가까운 관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감정이 행복이므로 자신의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행복이며 관계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작지만 사소한 기쁨을 다름 아닌 소박한 행복이라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진실한 교감, 가족 간의 조건 없는 사랑, 오래된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처럼 우리라는 개념이 가능한 관계가 구체적인 행복의 요건이며 주고받는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흐뭇한 교감을 진정한 행복이라 여길 수 있다면 유형의 가치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만족의 개념이 행복이므로 외부의 조건으로 형성되는 게 행복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늘어만 가는 위화감은 대다수의 정서를 조장하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으며 보고 듣는 문화는 진화하는데 반해 상대적 빈곤감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면 사람의 마음은 각박해지기 마련이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기존의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다.

이런 현상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의 가치가 외부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인데 인위적인 조건의 틀에 자신의 가치를 맞추는 것으로 행복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삼겹살에 소주를 나누던 소박한 행복이 화려하고 비싼 술집으로 향하고 수입에 맞지 않는 해외 명품을 할부로 구입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허영심과 무리해서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대책 없는 행동은 이미 자신의 가치 기준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경제적 성장의 산물을 행복이라 착각하는 분명한 오류이다.

2000년 전후까지 미국에서는 좋은 차, 큰집, 예쁜 아내(luxury car, big house, beautiful wife)를 성공의 3가지 조건으로 정의를 하고 흔히  'Money talk out there.'라는 말을 많이 한다.

"돈이 말하는 세상이야."라는 뜻으로 뉴스에서 앵커나 토크쇼 진행자도 자주 인용하는 말이고 지금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쓰는 표현이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단순 명료한 부의 상징을 대변하는 의미이고 물질만능시대에 적절한 유행어이지만 여기서 심리학자들이 정의한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력이 매우 나쁜 사람이 수술을 해서 정상시력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희망하고 어떤 청년은 멋진 신형 스포츠카를 갖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기대를 한다.

중년의 샐러리맨은 최고의 위치로 승진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꿈꾸며 생활한다.

시간이 흐른 뒤 시력이 나쁜 사람은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수술을 한 후  정상 시력으로 회복했고 젊은 청년은 오랜 시간 아끼고 아낀 돈으로 스포츠카를 구입했으며 중년 신사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원하던 높은 자리까지 승진을 했다.

그렇다면 그토록 원하던 바를 이룬 그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타인의 찬사를 제외한 자신만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길어야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실제로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와 수많은 조사를 통해 산출해낸 만족의 기간은 두 달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희망했던 일이었지만 현실이 되고 두 달여 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일상으로 적응이 된다는 뜻으로 학자들은 성취 후에 느낄 수 있는 만족의 상태가 일상화되는 기간을 연구하고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정의를 했다.

아무리 큰 행복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지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지는 과정을 쾌락 적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옛 말에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비교의 가치는 동기유발을 위한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내면의 가치를 쉽게 무너트리는 위험이 있고 채워지지 않는 허욕을 자극하는 오류가 잉태되기도 한다.

비교에서 비롯된 위화감이 시각과 사고를 변형시키기 쉬운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이며 그릇된 사고가 뇌리에 각인이 되면 무엇이든 진실한 가치를 파악하는 능력은 상실하고 만다.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행복이나 불행처럼 자신의 입장에 관한 주관적 오류는 쉽게 쾌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고 긍정과 부정의 대립각이 갈등으로 표출되면 합리화로 포장된 인지적 오류는 가진 자의 탐욕과 사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성실하게 사는 대다수의 모습을 폄하할 수 있고 기존의 보편적 사회의 질서를 무시하는 사고가 비교의 간극으로 인한 위화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날의 소박한 행복이란 구시대 문학작품의 소재로 묵혀지는 과거의 유물일 뿐 눈에 보이는 유형의 가치와 이윤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미 만연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노력한 결과의 만족도 엄연한 보람이고 행복이지만 행복의 지수를

성과의 잣대로 측정하는 것은 내면의 가치가 외형적으로 환산되는 평가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닐 것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믿음과 소망, 사랑은 가장 근원적인 행복의 자원이며 행복은 겸손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는 과한 욕망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현시대가 추구하는 능력주의의 경쟁의식 또한 행복을 차단하는 가장 큰 장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소한 것 하나도 돈으로 거래되는 사회이고 경제적 안정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돈은 우리의 삶을 위한 필요한 수단이지 인생의 목표가 아니며 수단이 목표가 되는 것은 명백한 역행이자 순리의 궤도가 결코 아니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자라지 않은 결실이 있어도 하나를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며 욕망이란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같지만 인간의 욕망에 의해 세상이 발전하고 번영한 것은 사실이다.

지적 욕구가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켰고 소유욕은 자본주의를 만들었으며 욕망이 없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욕망의 결과로 첨단과학과 현대문명을 이룩한 역사를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고의 세월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노력이 오늘을 만든 결과를 욕망의 대가로만 인식할 수는 없으며 힘겹고 고된 우리네 인생 속에는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교류 속에 정과 사랑이 없었다면 세상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만남과 사연이 모여 인생을 만드는 것이고 좋은 일, 슬픈 일은 순서 없이 쌓이고 아프고 힘겨운 시간이 지나면 기쁘고 좋은 시간도 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과거에도 오늘도 행복의 의미가 삶을 지탱했으며 다가올 내일에도 행복한 시간은 존재할 것이다.

행복했던 추억은 지나간 과거이지만 오늘의 행복은 우리의 몫이며 오늘 우리가 행복하다면 다가올 내일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삶의 무게에 가려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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