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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메아리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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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29. 2022

아날로그가 더 좋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우연히 학창 시절에 인기 있었던 음악을 듣게 되면 그 시절의 추억이 불현듯 떠오르고 그때 젊음의 매개체가 시리즈처럼 연상된다.

자주 가던 커피숍과 카페도 생각나고 친구를 만나는 장소가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이었던 까닭은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커피숍에 갈 필요 없이 식당으로 직접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양식이라는 간판은 번화가마다 있었고 카페보다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가격이 좀 더 비싼 곳이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다.

그 당시 즐겨 먹던 메뉴는 돈까스와 비프까스, 비프까스와 생선까스가 같이 나왔던 정식이라는 메뉴가 인기 있었으며 햄버거 스테이크를 함박 스테이크로 부르던 메뉴는 부드러워서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주문이 끝나면 밥으로 드릴까요? 빵으로 드릴까요?를 물어보던 웨이터들은 한결같이 날씬했다.

아날로그를 기억하는 엄마, 아빠들은 이미 익숙해진 디지털 자동화 시스템이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날로그 시대가 더 좋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옛날이 좋았던 사유야 말하자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젊은 시절이 좋은 이유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다시 느낄 수 없는 그 시절의 정서가 그립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당시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창구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향유하는 문화의 가치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어서 베스트셀러가 문화를 주도했고 FM 라디오는 젊음의 채널이었으며 주말이면 단성사, 명보극장, 피카데리 극장에 줄을 서던 장면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촌스러운 파마머리가 당시에는 세련된 헤어스타일이었고 타이트한 빳빳한 면 청바지가 젊음의 상징이었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선배에 대한 예절이 지나칠 정도로 깍듯했고 요즘 세대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직원들과 함께 하는 점심 식사의 메뉴는 직속상관이 좋아하는 음식을 항상 먹어야 했다.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한정적이라 대화의 화제도 요즘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의 스토리는 퇴근 후 공통된 술안주였고 고조된 문학의 밤에는 니가 옳다, 내가 옳다는 큰 소리도 잦았던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할리우드 스타의 스캔들은 어떤 경로로 알았는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화제였고 한국 스타들의 사생활 또한 관심이 집중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트로트가 열풍이지만 그때 유행했던 발라드는 젊은 감성을 저격했고 애절한 가사는 실연의 상처를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제 그 시절의 주역들은 엄마, 아빠가 되었고 자고 나면 바뀌는 요즘 신세대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버겁기만 하다.

디지털 시대는 시간의 속도계를 빠르게 돌려놓았고 편리한 모든 시스템은 사회를 변화시켰다.

급속하게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는 사람들의 정서 또한 인공지능처럼 변화시켰고 긍정과 부정의 구분마저 모호해졌으며 불필요한 진화를 당연한 시대적 상황으로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변화된 사회는 바쁘기만 하지만 다양한 가치가 증가할수록 지식과 문화는 그 깊이가 얕아지고 있다.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루저로 취급하고 획일화된 시스템을 강요당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것이 좋고 편리해도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에서 탄생한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 없이는 새로운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드웨어가 없이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은 이제 하드웨어의 존재까지 잊게 만들고 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새로운 것이 생활과 문화를 잠식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기능과 역할을 외면하게 되고 사회 모든 분야의 조화를 부정하게 되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전에 새로운 물결에 의해 원래의 기능과 역할마저 수몰될 가능성이 있다.

즉 조화의 필요를 외면한다는 것은 눈앞의 현상만을 보게 되는 것으로 근시안적 사고가 고착되는 것이며 이런 사고가 지속되면 단편적인 것이 일반화되고 일반적인 것이 전부라 믿는 인지적 오류가 발생한다.

조화가 깨진다는 것은 사회의 원리를 보지 못하고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저마다 다른 고귀한 가치가 모여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것은 마치 뜻도 모르고 기능만을 수행하는 인공지능과 다를 바 없는 변화에 휩쓸리는 것이다.

물론 사회는 진화하고 발전해야 하지만 새로운 것의 가치가 기존의 것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밀어 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면 시스템의 변화와 교체는 반드시 필요하고 부분적 장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를 변화시킨다.

항상 변화와 발전은 시행착오와 진통을 수반하지만 진통의 과정 또한 긍정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시대의 기류에 역행하지 않는 변화를 추구해야 혼란이 없는 법이다.

얼마 안 된 옛날이지만 LP 디스크로 음악을 듣던 시대를 지나 CD 플레이어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깨끗한 고음질의 CD 플레이어 시대가 지속될 줄 알았지만 이어 MP3가 등장했고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영상 통화는 물론 영화, 음악. 서류를 작성하고 전송까지 하는 모든 기능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 할 일을 조작만 하면 컴퓨터가 대신하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이 내장된 기능은 설정만 해놓으면 사람이 작동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필요한 기능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가정용 전자제품도 이미 상용화되었다.

가끔 패스트푸드 식당에 가면 말끔한 정장에 세련된 아줌마, 아저씨도 자동주문을 어떻게 할지 몰라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고 관공서 민원 서비스의 자동 입력 사용법을 몰라 직원을 찾는 상황이 속출한다.

특히 종합병원 자동 시스템은 안내해 주는 직원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지만 직원이 바쁠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엄청난 의료비를 지불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누구를 위한 자동 시스템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이런 현실을 시대에 맞는 변화라 하고 진화와 발전이라 한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지, 변화된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지 종잡기 어렵다.

그리고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위 자본주들이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속내가 감춰져 있다

다국적 기업이 개발한 과학과 기술이 인류를 위한 투자라는 슬로건(slogan)을 내세워 출시되는 신제품들은 글로벌 시대의 엄청난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다 하지만 출시된 신제품의 매출이 증가하면 내장된 기능을 모두 새로운 기능으로 교체하고 사용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기존의 제품들을 부품이 없어 AS 서비스를 못 받는 폐품으로 만든다.

이쯤 되면 세계의 수많은 고객들은 어쩔 수 없이 대기업의 신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곧이어 불필요한 업그레이드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거대 글로벌 기업들의 엄청난 이윤을 진화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자본이 주도하는 유행과 예술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과거가 그립다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의 획일화된 세상, 이전의 사람 냄새나는 정서가 그리운 것이고 천천히 변하는 유행, 수명이 긴 문화 속에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정체된 여유가 좋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인터넷, 인공지능, 메타버스가 플랫폼을 통한 무한한 과학 기술의 발전임을 부정할 수 없어도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가 좋은 세상, 기다림이 있는 아날로그 시대가 좋았다는 진심 어린 마음이 시대의 변화에 제동을 걸고 싶은 기성세대의 심정이라 여겨진다.

과거 엄마, 아빠의 시대에도 어르신들은 우리 부모님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 아빠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우려해야 할 사안이라면 기성세대가 젊은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차이의 관점이 아닌 과하게, 너무 급속하게 발전하는 과학과 문명의 진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와 같은 첨단 시대, 첨단산업의 상상 못 할 발전은 순리와 자연의 법칙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우려이다.

업무는 손가락만 움직이면서 컴퓨터로 하고 운동은 바쁜 시간을 쪼개 돈을 내고하며 책은 디지털 북으로 보고 친구도 영상 통화로 보면 그만이고 쇼핑은 인터넷 쇼핑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세상이지만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운 사람들은 아직 몇 군데 안 되는 서점에 직접 가고 싶고 퓨전 요리보다는 전통 한식이 좋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실감이 나며 쇼핑은 매장에 직접 가야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다.

고수해야 진가를 아는 취향은 굳이 바꿀 필요가 없고 익숙한 것이 편리하다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사람들은 아날로그 시대에도 자주 샤워를 했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다.

물티슈가 대중화된지는 불과 몇 년이 안 되지만 물티슈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지 못한다.


우리는 기업이 주도하는 생활과 문화에 길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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