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이 된 아들- 열네 번째 마지막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를 쓰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일들을 기록해 보려고 제목을 써두고 내용을 구상도 해뒀지만...
결국 기록하진 못했다.
그 무수히 많은 일들이 어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결론은 이건... 아이마다 많이 달라 부딪히고 겪어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글을 쓸 힘이 없었던 이유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경계선지능이라는 판결이 내려지고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봤던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경계선지능의 소녀는 성적이 아주 좋지 못했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교실에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무시를 받고, 따돌림을 받는다.
엄마는 지능이 조금만 더 낮아(아이에게 좀 더 모자라길 바라는 그 애달픈 마음이란...) 장애진단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장애와 비장애 경계의 지능점수.(완벽한 현실고증의 이야기...)
소녀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비행기를 보면서 느꼈던 설렘과 기분 좋은 마음 때문이었고, 비행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항에서 일자리를 찾았다는 내용으로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덕분에 아이의 상황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 뒤로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정보검색을 통해 치료방법을 찾아나갔다.
강남으로 종로로 그리고 집 근처로 선생님들을 찾아다녔고,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상담치료였다.
몇몇의 선생님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검사도 진행했는데 대부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아이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주의력 결핍.
심리를 먼저 다루어야만 인지치료도 가능하다는 비슷한 답변을 주셨고,
주의력 결핍으로 약물복용도 권하셨다.
정신과를 방문해서 주의력 검사를 받았고, ADHD 약물의 복용도 시작했다.
(사실 여러 곳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불안이 극에 달한 부모를 상대로 이 검사, 저 검사를 받게 만들고, 나라의 지원을 받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소견서 비용도 받아 챙기고, 결국은 지원은 못 받고, 만날 때마다 불안을 더 자극하는 선생님을 만나 마음고생도 했는데, 덕분에 상담선생님을 대하는 방법도 조금씩 배워갔다.)
ADHD 약물의 가장 큰 부작용은 식욕을 없애버리는 것이라 그렇잖아도 마른 아이에게 과연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컸다.
아이에게 잘 맞는 약을 찾는데도 몇 달의 시간을 보냈고, 잘 맞는 약을 찾은 다음엔 미국발 관세정책으로 약의 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겨 또 맞는 약을 찾는데 시간을 써야 했지만, 최근에 다시 수입이 재개돼 이젠 안정적으로 복용 중에 있다.
주 3회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 2회 토요일과 수요일 상담을 받고 있고, 상담을 받은 지 1년 7개월을 넘기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아이는 품행장애까지 더해서 우리의 생활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훔쳐왔고, 사건을 해결하느라 애간장이 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품행장애에 대해서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선생님께서 다른 견해를 주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품행장애 아이들은 대부분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며 잘못을 지적하지 말고,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을 주라고 하셨고,
상담선생님께서는 갖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과, 사회인지가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약 잘 먹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오랫동안 상담을 해오신 상담선생님께서 아이를 더 잘 파악하고 계실 것 같아 우리는 상담선생님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인가 깨달았다. 어? 요즘은 문제가 없이 조용하네....
그렇게 서서히 품행장애는 사라졌다.
그에 반해 긴 시간 상담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늘 무기력해 보이고, 지쳐 보였던 아이.
상담치료를 두 곳에서 받고 있었는데, 두 곳 선생님 모두 이 정도면 우울이 조금 사라질 법도 한데 아이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하셨다.
키는 169, 체중은 43.
늘 흐느적거리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 주유소 앞 바람인형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고 했다.
체중이 너무 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께서 심장진료를 한 번 보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빈맥소견이 있다고.
그리고 우리는 자가면역 질환인 그레이브스병을 진단받았다.
갑상선 호르몬수치가 비정상적이게 너무 높았고, 그 영향으로 심장은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심장내과 진료와 내분비내과 진료를 협진해서 보기 시작했고, 두 선생님 모두 그동안 아이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아이가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는 지경이었다고...
모든 일정을 멈추고 온전히 쉴 수 있도록, 학교 등하교만 허락하고, 학교를 다녀오면 무조건 누워만 있으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이제야 진짜 퍼즐이 맞춰졌다.
늘 피곤해하는 아이, 겨울에도 땀을 흘렸던 아이,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졌던 아이, 키는 계속 크는데 체중은 늘지 않았던 아이...
아이가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모습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를 동반했기에 그랬던 것이었다....
우리는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4달 만에야 수치들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이미 손상된 심장의 기능이 돌아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치료를 통해 아이는 변했다.
키 170에 체중 55를 찍었다.
이제 바람인형이란 별명은 버릴 수 있게 됐다.
누워도 바로 잠들지 않는다. 겨울에도 흘리던 땀이 여름인데 멈췄다. 피로함이 줄었다.
그간의 시간을 통해 나도 변했다.
왜 하필 내 아이여야 하냐는 마음과 왜 하필 인지기능이어야 하냐는 물음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이 내 아이를 향한 시선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크게 짓누르고, 힘들게 했던... 나의 잘못으로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는 죄책감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삶이 참 쉽지가 않다.
하나 해결되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고, 또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를 일으킨다...
JTBC에서 방영했던 "나쁜 엄마"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 인생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도 기특하죠?
뭔가 한 가지를 뺏어 가면은 그 자리에 꼭 다음 한 가지를 채워 놔요.
부모 복이 없어서 남편 소중한 걸 알았습니다.
남편 복이 없어서 자식 소중한 걸 알았어요.
그 자식이 아프니 그 자식을 돌봐야 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이렇게 짧다 보니 그 자리를 대신 채워 줄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살면서 이런 소중한 것들을 다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귀한 인생을 살 수 있어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긴 시간을 아이와 씨름하며 세상이 다 손가락질해도 한 사람만은 믿고 보듬어 주고, 아이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그 자리가 엄마인 나의 자리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의 잣대로 도착지를 정하지만 않는다면,
조금은 느리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면 그래도 도착할 수 있음을 믿는다.
여름방학을 맞아 생활기록표를 들고 왔다.
엄마 보세요~ 매우 잘함과 잘함밖에 없어요! 영어만 빼고요!^^
(영어 학원은 작년 봄에 그만뒀다.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받아해서.... )
"와!!! 그간 열심히 하더니 진짜 잘 나왔네!!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영어도 하면 잘 나올 수 있겠는데?^^-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우선은 잘한 것만 칭찬하고 다음에 기회를 노려보기로^^)
아이가 성폭력범으로 재판을 받는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를 잃고 또 하나를 얻었다.
나 또한 귀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기에 참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