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그 후_8) '소리 없는 오른팔 ②'
다시 도약하겠다고 있는 힘껏 날갯짓을 시작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찍는 번개와 같은 재앙.
기적과 기대와 같은 희망의 낱말들은
절망과 한숨의 양과 비례하며 매일을 저울질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건,
아직 잃지 않은 두 다리와 왼손이 있으니까.
남은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면 내일은 또 오니까.
나는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사서가 될까?
<11월의 어느 날, 배운의 왼손 일기>
미국에 있는 언니와 내 주치의가 통화를 하였다.
주치의는 언니가 주변 의사들에게 많이 묻고 논문도 많이 찾아본 것 같다고 했다.
스피커폰으로 한 통화였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가 둘 사이에 오고 갔고, 나는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게 일어난 일이 논문 등 문헌 상에서만 나타내는 전 세계에서 동일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 단 0,4%에게만 나타난다는 후유증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작디작은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사부작대며 살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치의는 내게 이것이 분명 의료사고는 아니지만 주치의로서 뼈 아픈 책임을 느낀다며 도망치지 않고 그의 모든 지식과 연줄을 동원하여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신경 쪽으로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결국 의사들의 회의 끝에 3차 수술을 받기로 하였다.
단 일주일 동안 3번의 전신마취 수술이라니…
평소 영화 속에서 칼로 사람을 난도질하는 장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는 내 목에 난 상처를 소독하거나 그것을 볼 때마다 완치되지 않은 공황장애가 나타났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느꼈다. 그리하여 매일 진통제와 동시에 우울증 약과 공황장애약, 불면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동시에 복용해야만 했다.
내 상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했다.
통상 1년 안에는 돌아온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한 신경 손상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100% 돌아온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할 것이다. 영구적 장애로 심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등등…
산재처리 및 실업급여에 대한 절차와 1차 수술 병원에서의 보상 처리 등 각종 행정적 서류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통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시작할 수 없었다.
22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오래 쉬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쉬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내게 일어난 사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져 현실감이 없었다.
낮에는 그저 면회가 되지 않는 통합간병센터에서 외부와는 단절된 채로 매일 시간 맞춰 나오는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 욕구에 맞춰 그야말로 참된 돼지 비구니의 삶을 살았다.
항상 얼굴 살이 없는 게 고민이었지만 이제는 보톡스가 필요 없는 퉁퉁 부은 나의 얼굴을 보며, 굳이 피부과 시술을 받지 않아도 되니 돈이 굳은 것에 감사하다 해얄까.
그럼에도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면 혼자 남은 병실에서 참을 수 없는 적막감 속 두려움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현실이 파도와 같이 쏟아져 내리며 모래사장 속 뒹굴고 있는 지친 나를 덮쳤다.
새벽에 나의 가장 친한 벗, 남에게 전화를 했다. 당연히 받지 않을 줄 알았지만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아침에 읽은 남은 서늘한 예감에 뒤통수가 저릿해졌다고 했다.
‘남아… 나 너무 무섭다…’
매일 밤이 되면 전화를 붙들고 통곡을 했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손을 홀로 연신 흔들어보고 주물러도 보면서, 이런 손으로 사서가 되어 어떻게 책을 들 수 있겠냐고 연신 미안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주치의에게 울부짖었다.
2인실이지만 홀로 쓰고 있는 병동 밖까지 내 목소리가 들렸던 것인지, 입원한 층의 모든 사람은 내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마다 내게 다정하고도 조심스러운 안부를 물었지만 멈추지 않는 통증과 힘 없이 떨구어지는 오른팔은 그저 소리 없는 인사를 할 뿐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것일까.
그러다 결국엔 전 직장의 탓으로 모든 것이 돌아갔다. 나를 괴롭혔던 J부장, 단숨에 나를 내친 사장, 그것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고 방임한 인사 부장…
그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들에게 사과를 받은 적도 설명을 들은 적도 없었다. 도대체 내게 왜 그랬는지, 왜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넣은 건지, 그 이유를 따져 묻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
매일 밤 병원의 소등과 동시에 활발하게 춤을 추는 나의 정신. 강박에 사로잡힌 나의 날카롭게 그들을 파고드는 칼과 같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면의 밤 속에서 한 편의 서사시로 이어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문장처럼 숨도 쉬지 않은 채 휘몰아치는 한 페이지의 원망과 저주의 질문들.
'나는 그들에게 꼭 묻고야 말리라.'
그들이 내게 시킨 몇 십 번의 PPT 수정보다 더하게 몇 천 번이고 그 질문의 대서사시를 시뮬레이션했다.
‘당신들은 살다가 죗값을 받는 날이 올 거야. 그런 날이 오게 되거든 꼭 한 번은 내 얼굴을 떠올리게 될 거야.’
그렇게 먹은 매서운 마음은 내 상상 속에서 그들의 어두워진 삶 속에 이미 가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