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릴리스는 백합목 수선화과의 식물이다. 꽃을 보면 할머니나 친정 엄마가 예전에 키우던 꽃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왠지 추억 같은 것... 레트로한 감성의 꽃이다. 누군가는 빨간 백합 같다고 하던데 적절한 표현 같다. 백합에 비해 향기는 강하지 않은 편이며, 꽃대를 쭉 뻗어 올린 모습이 수선화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릴리스는 멕시코, 남미 지역이 원산지로 꽃이 매우 크고 화려하다. 활짝 개화했을 때 아이 얼굴만 한 크기다. 아마릴리스의 대표 컬러는 레드인데, 요즘엔 다른 색상도 많이 보이고 무늬종도 있는 것 같다. 특히, 겹꽃의 화려함은 어마어마하다. 꽃이 크고 화려한 덕분에 절화용으로도 많이 판매된다.
우연한 기회에 아마릴리스 구근을 가져와 키우고 있다. 꽃이 피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게 보낼 수 있다면 아마릴리스에게 완벽한 식집사가 될 수 있다. 과한 정성보다는 기다림이 필요한 꽃이기 때문이다.
서늘한 곳에서 휴면을 시키면 연중 여러 번 꽃을 볼 수도 있다고 하나, 보통은 일 년에 한두 번 꽃을 볼 수 있다. 구근 상태에서는 꼭 양파같이 보이기도 하며, 꽃이 없는 시기에는 놀랍도록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약속을 잊지 않고 꽃을 보여주니 볼수록 기특하고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꽃이다.
아마릴리스는 오래 사랑받아온 만큼 꽃말이 아주 다양하다. 자랑, 수다쟁이, 은은한 아름다움, 인공적, 침묵 등을 모두 꽃말로 품고 있다.
특히, 수다쟁이와 침묵을 동시에 꽃말로 하는 식물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팔처럼 크게 벌어지며 개화하기 때문에 자랑, 수다쟁이 같은 꽃말이 붙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왜 침묵일까? 구근 상태에서 오래도록 침묵하기 때문일까?
인공적인 느낌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화려함이 있으니 인공적이라는 꽃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라니 이건 또 어떻게 된 건지? 어린 왕자가 말한 모순덩어리 꽃이 이런 걸까?
아마릴리스는 꽃이 큰 만큼 무척 강인해 보이는데, 사실은 속 빈 강정 상태라고 한다. 꽃대가 텅 비어 있어 쉽게 꺾이거나 손상되니 화분을 자주 옮기는 일이나 강한 바람은 피해야 한다. 아이들과 애완동물로부터도 멀리 두는 것이 좋다.
누군가는 아마릴리스를 겉모습만 화려하고 그 속이 비어 있으니 화려함을 쫓는 여인 같다고 한다. 글쎄, 그 속이 비어있을지언정 저만큼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을 가진 꽃을 피우려면 나름대로 온 생명을 다할 만큼 힘을 쏟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시간에도 말이다.
베란다 한 구석에서 잊히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아마릴리스. 그러던 어느 날, "이것 봐! 여기 내가 있다고!" 당당하게 소리치며 누구보다 크고 화려한 블루밍을 보여주는 아마릴리스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면 경이롭다는 단순한 표현 이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 개화를 지켜보면서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지만 나도 저렇게 온 힘을 다해 한 번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자는 결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를 양파로 취급할지라도 언젠가는 나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보여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한 송이 아마릴리스처럼...
지금은 그 시간을 위해 영양분을 흡수하며 내실을 다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수개월간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초라한 구근도 겨우내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우리 안의 꽃을 피울 시간에 아직 다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어날 그때에 가장 화려하고 큰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루하루 후회 없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 꽃을 피울 그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 기다림과 약속의 꽃, 아마릴리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