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은 날 [완결]

by 황혜림


문이 열리는 순간, 찬 공기가 뺨을 스쳤다. 밤공기는 평소보다 더 묵직했고, 그 속에 담긴 냄새는 묘하게 익숙했다. 커피향이 아니라, 오래된 종이와 낡은 가죽 냄새. 그림자가 문턱을 넘었다. 그 발걸음은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걸음이었다. 가볍지만 단단하고, 한 번도 비틀리지 않는 리듬. 그는 말없이 내 앞에 섰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 얼굴은 한동안 그대로였지만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내 마음 깊숙이 가라앉았다. 나는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의 부재, 남겨진 열쇠와 시계, 그리고 수첩 속 마지막 문장. 그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냈다. 빛바랜 흑백사진. 세 사람이 웃고 있는 사진 속, 가운데 여자가 있었다. 밤마다 내 꿈속에 나타나던 웃음. 그 웃음이, 지금 내 앞의 남자와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내 목소리는 의도치 않게 떨렸다. 그는 답 대신 내 카운터 위에 사진을 올려두고, 그 옆에 작은 봉투를 놓았다. 봉투 안에는 낡은 손목시계와 종이 쪽지가 있었다. 쪽지에는 단 한 줄. “자정이 되기 전에,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시계는 멈춰 있었다. 바늘은 11시 50분을 가리킨 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내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다시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카페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마치 누군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겹쳐진 듯한, 묘한 울림. 나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 문을 열었지만 골목은 비어 있었다. 바람만이 남아 문턱 위에 머물다 사라졌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카페 불을 켜지 않은 채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목시계의 바늘은 여전히 멈춰 있었지만, 내 안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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