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우유가 된 나에게

예술, 너 때문에 더럽게 힘들다 - 3편

by 루아 Rua

감독님이 그랬다.

“지금 이것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넌 앞으로 어떤 것도 성공 못 할 거다.”


그 말이 나를 오래 따라다녔다.

태권도 선수를 그만두고 미술을 하겠다고 했던 열여덟의 나에게 남긴, 일종의 저주.

그 한마디는 마치 내 등 뒤에서 귓가에 속삭이듯 계속 되뇌었다.

“넌 안 될 거야.”


그 말이 분했다.

그 말 하나로 나는 타오르듯 달렸다.

공부든 그림이든 다 잘해서, 서울 4년제 대학교에 붙고야 말겠다고,

예술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나는 고3이었고, 내신 1등급이었다.

하지만 수능 수학은 늘 나를 무릎 꿇게 했다.

수포자였던 나는, 서울대 수시도 3차에서 수학 때문에 떨어졌다.


재수를 결심했다.

2000년 밀레니엄 대혁명의 교육과정 개편.

사람들은 “재수는 안 된다”라고 했다.

나는 울고 또 울고 나서 결심했다.

운동선수 하다 18살부터 공부하고 그림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운동하듯 하면 못할 게 뭐냐는 마음 하나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밀레니엄 입시개편은 실기에도 거센 혁명이 불어

홍대 모든 미술과의 입시종목이 ‘석고정물수채화’ 단 하나로 바뀌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수채화를 입시에 써야 한다는 말에 망설일 틈도 없었다.

원장 선생님이 물었다. “할 수 있겠어?”

나는 말했다. “해야죠. 딴 방법이 없잖아요.”


재수생이었던 그 한 해, 나는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낮엔 수학, 밤엔 수채화.


공부에 집중하려고 삭발도 했다.

눈썹까지 밀고 싶었지만, 엄마 생각에 참았다.

수능 상위 5% 안에 들었고, 대치동 미술학원에서도 실력 있는 몇 손가락 안에 들었다.

나는 그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씁쓸했다.

홍대는 수능 상위 2~3%가 기준이었다.

나는 5%.

다시 미끄러졌다.


서울시립대 산업디자인과에 성적기준 간당간당 1차로 붙었고,

실기 2등을 해서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 원하던 곳은 아니지만 무언가 운명처럼 이끌린 학교,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서울시립대를 안 갔어?”

그땐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누군가는 “남편 만나려고 그랬겠지”라며 웃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내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목표했던 서울 4년제 미술대학교에 내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괜찮을 거야.”

“앞으로는 잘 풀릴 거야.”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모든 날들을 지나온 지금,

나는 다시 전기 끊기고 핸드폰 정지되는 인생 한복판에 서 있다.


가끔은 정말, 유통기한 지난 상한 우유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고, 가치도 못 느끼는, 그런 나.


홍이삭 님이 싱어게인 3 무대에서 그런 말을 했다.

“전 상한 우유 같아서… 제 유통기한이 알고 싶어요.”

그분은 결국 우승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유통기한을 몰라

이 길의 끝을 헤매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예술을 붙잡고 있다.

상한 우유라도, 내 안엔 아직 향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운동선수 하다 뛰어든 이 길,

그 뜨거웠던 삼 년을 기억하는 한,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편 예고 - 시리즈 4편

《홍학과 벌레 사이에서》

미술을 처음 마주했던 어린 날.

상처로부터 시작된, 나의 가장 오래된 예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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