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너 때문에 더럽게 힘들다 - 4편
내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2학년 봄날이었다.
대전에서 용인의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으로 소풍을 갔던 날,
거기서 처음 마주한 홍학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긴 다리와 목, 어여쁜 몸통과 날개,
핑크도 주황도 아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한 색감의 생명체.
그 생명은, 내가 아는 어떤 것과도 달랐다.
나는 그것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억하고, 그 느낌을 다시 꺼내보고 싶었다.
소풍이 끝나고, 선생님이 소풍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마치 처음으로 누군가와 비밀을 나누는 것처럼,
그날의 공기와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중심엔 홍학을 그렸다.
꽉꽉 채웠다.
360도로 펼쳐진 풍경, 나무 사이사이의 사람들,
그 속의 나, 그리고 날 사로잡은 홍학들.
내가 본 그 순간들을 정성껏, 진심으로 담았다.
잠을 설쳐가며 완성한 그 그림을 들고,
다음 날 학교에 가는 내 마음은 너무 벅차고 설레었다.
그리고 선생님 앞에 그림을 내밀었다.
나는 기대했다.
나를 칭찬해 줄 거라고, 잘 봤다고 말해줄 거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한참을 그림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루아야, 넌 똑바로 서서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땅에 머리를 박고 서 있게 그려?
나무도 거꾸로 박혀 있고, 이 새들도 이러면 이상하지 않니?”
입꼬리 한쪽을 비튼 그 미소.
말보다 그 표정이 더 창피하고, 부끄럽고,
나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게 만들었다.
그림을 바라보던 나의 두 눈은 금세 흐려졌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늘 말했다.
“울면 바보고, 울면 엄마도 너를 버릴 거야.”
아빠에게는 이미 버림받았고,
엄마마저 날 싫어하면 나는 정말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울음을 꾹 참았다.
입을 다물고, 그 이후로는 미술 시간에도 마음을 닫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되는 이상한 아이구나.’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믿었고,
미술의 ‘미’ 자도 보지 않으려 했다.
대신 태권도를 했다.
움직이고, 뛰고, 부딪히는 것이 나를 위로했다.
1품, 2품, 3품…
그렇게 나는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삼키고 자랐다.
그런 내가 다시 미술을 품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반의 장난꾸러기들과 독특한 아이들의 개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분이셨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다름을 존중했고,
어떤 날은 멘사 문제 같은 퀴즈를 내주어 아이들이 팀을 짜고 풀게 했다.
수학을 싫어했던 나도, 엉뚱한 상상력으로 문제를 풀어냈고,
내가 속한 팀은 간식을 먹으며 환호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엉뚱하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건, 그 선생님이 미술 전공자였다는 점이다.
방과 후에 남는 아이들을 모아, 같이 그림을 그리고 놀자고 하셨다.
나는 거절했다.
미술에 대한 상처가 아직도 나를 조용히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말했다.
“안 해도 돼. 그냥 놀고 싶은 거 하고 놀자.”
그 말에 위로받은 나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나도 한 번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연필을 쥐었다.
놀듯이, 장난처럼, 웃으며.
선생님은 내가 낸 그림을
한국일보 미술대회에 출품하셨고,
나는 금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미술은 내게 ‘벌레 같았던 나’를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는 도구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상처를 피해 숨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들여다보고 꺼내어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보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기억해 주는 아이들,
나로 인해 예술을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들이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받은 고마움을 세상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술을 놓지 못한다.
다음 편 예고 - 시리즈 5편
《너무 많은 이름으로 사는 나에게》
예술가, 엄마, 딸, 며느리, 작가…
역할에 파묻힌 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