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였다, 그러나

예술, 너 때문에 더럽게 힘들다 - 6편

by 루아 Rua


고명환 님의 책 《고전이 답했다》에 이런 문장이 있다.

“한낱 벌레일지라도 자기 의지대로 산다면, 그렇게 살지 않는 인간보다 낫다.”

카프카의 『변신』을 이야기하며 언급된 문장이었다.


그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멈춰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벌레였구나.”


나는 몸이 벌레가 된 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벌레가 되었다.


미술작가로 살겠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면,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들고, 예술 기획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 ‘돈을 좇는’ 시기일 뿐이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잠시’는 끝이 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경제적 거지가 되어갔다.


세금이 두렵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것들이

이제는 제곱의 속도로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전기 끊겠다는 안내문, 핸드폰 정지, 실효된 보험, 연체된 국민연금.

친한 친구, 가족들에게까지 미안함과 민폐가 줄줄이 이어졌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멀쩡했지만,

경제적 현실 속의 나는 하수구 속 벌레 같았다.

흉측하고, 비루하고,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 적도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벌려놓은 일 수습도 안 하고 그냥 떠나는 건 비겁하지 않나.”

“책임지고 이 하수구에서 나와야지.”


그러니까, 난 살아야 했다.

그게 두렵든 뭐든 간에.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예술을 말하고 있었고, 글도 쓰고 있었다.


그 모든 게 진짜 나였지만, 가면처럼 느껴졌다.

고상한 척, 여유 있는 척, 예술가인 척.


독촉 전화가 울릴 때마다

등 뒤에서 “네 정체는 이거잖아”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메일함에 쌓이는 연체 고지서가

마치 내 이중적인 삶을 증명하는 문서 같았다.


나는 벌레처럼 숨고 싶었고,

진짜 쥐구멍에서 울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예술교육가로 살고 있다.

그림이, 나를 벌레에서 다시 사람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처럼 살지 못할지라도

사람처럼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예술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나를 몰라보는 세상을 원망했고,

예술이 돈이 안 되는 현실을 저주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감사가 생긴다.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음에,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예술은 날 버렸는데

나는 예술을 아직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나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벌레였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그릴 것이다.

언젠가는 이 하수구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그릴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다음 편 예고 - 시리즈 7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린다》

‘왜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답은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오늘도 붓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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