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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있네!

by YT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소설 쓰고 있네!

이 표현과 비슷한 표현으로는 ‘놀고 있네!’라는 말도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소설 쓰고 있네!’는 말하는 내용에 대한 지적이고, ‘놀고 있네!’는 말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행동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과거 동양 문화권에서 소설이 평가절하 되어 왔던 것은 소설의 허구성 때문이었다. ‘소설 쓰고 있네!’에서의 부정적인 느낌은 화자가 하는 이야기의 허구 가능성 때문이다. 즉 화자는 사실(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꾸며서 가짜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구보다, 소설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서사다. 비록 현대 소설에서 서사는 좀 더 복잡해지고, 가끔은 서사 자체를 문제 삼아, 실험적인 작품으로 변해가지만, 그래도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 서사다. 서사라는 본질적 특성 때문에 소설은 갖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서사(이야기)는 문학을 넘어 역사로, 철학으로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케팅의 영역으로 옮겨와 고객을 향한 ‘Story Telling’이라는 멋진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서사(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그 안에 허구가 끼어들 여지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허구, 거짓은 서사가 끌고 올 수밖에 없는 부산물이다. 서사가 시작되는 순간 허구는 어둠에서 슬며시 끼어든다. 그 순간 서사는 눈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팔뚝에는 울퉁불퉁 핏줄이 서는 것이다. 서사는 이제 자신의 통제력을 잃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확률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생명력 넘치는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서사는 쉽게 화자와 분리되며, 모든 사람이 올라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올라탄 사람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소설 쓰고 있네!’라는 비아냥은 다가올 서사의 광포한 질주에 대한 경계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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