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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Jan 03. 2024

서울촌년

Ep.1 만남



 



12살 정희가 정지에 들어서자 거북이 등짝만 한 가마솥 위에 따닥따닥 붙어 있던 콩자반 같은 파리떼와 마주한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얘네들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고?'라는 체념이 들었다.

기가 막힌 광경이다. 달려드는 파리를 치우려 손사래를 쳐도 얄궂은 놈들은 서울깍쟁이를 더 놀리려는 듯 더 달려들었다.

'잠깐 사는 거겠지 '라며 혼잣말로 되뇐다. 이 집에서 정희는 대학 들어갈 때까지 비비고 살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산 밑 외딴집엔 해가 일찍 마당으로 기어와 앉는다. 어둠이 내리면 엄마는 호롱불과 등잔불을 준비하신다. 표주박만 한 속이 환한 등잔은 벽에 걸어 방안 가득 비추이게 했고 밤새 그을음이 올라와 아침에는 유리살이 까만 연탄빛 같이 변해서 등을 들고 냇가에 나가 지푸라기에 재를 묻혀 속살을 닦아 흐르는 물에 씻으면 다시 뽀얀 얼굴을 드러낸다. 주먹만 한 하얀 자기 호롱불은 저녁에 숙제를 할 때 상위에 올려놓아야만 책을 볼 수 있었고 석유 냄새가 늘 코를 찌르고 심지에서는 까만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났다.



뒷산은 밤나무 천지인데 뽀얀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아카시아향과는 다른 뇌를 마비시키는 냄새가 난다. 이 마을 뒷산 밤나무는 정희네 고모네 산이었다.


정희네 아빠는 사업을 하시다가 모든 재산을 친구 동업자에게 헌납하고 시골로 돈 500만 원을 들고 가족들을 데리고 낙향하셨다. 아빠가 40 즈음이셨다. 아빠는 적응하시느라 자갈로 뒤덮인 돌밭을 새벽부터 구부리고 돌을 추려내셨다. 정희네 식구들은 아빠가 추려낸 돌이 내천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았다. 아빠는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돌밭을 일구어 거기에 고추, 상추, 고구마, 감자, 무, 배추 등 먹을거리들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셨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기에 아빠의 손과 발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고 허리는 갈수록 구부러지셨다. 친구와 출판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식구들을 이렇게 시골로 데리고 와서 고생시키는 것을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밤꽃




집앞쪽으로 흐르는 강물은 홍수 때가 되면 평소와 다른 황톳빛으로 변한다. 비가 며칠째 무섭게 계속되면 센 물살에 윗마을에서 떠내려오는 가구조각들 쓰레기 부유물들이 쓸어져 떠내려오는데 물소리까지 더해져

'그 물이  안방까지 들어오면 어쩌나? ' 정희는 홍수가 지나갈 때까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다행히도 누런 물은 거기까지만 그녀의 집 마당 울타리까지만 쳐들어왔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이 흐린 회색빛에서 블루사파이어처럼 변신을 하면 물 색깔도 투명한 빛으로 변하여 언제 그랬냐 싶게 깨끗해졌다.



   

두세 번의 겨울이 지난겨울 정희네 집에도 전신주가 놓이면서 전기가 들어왔다. 서울서 가지고 내려왔던 골드스타 금성 tv도 제 할 일을 하게 되었고 '전설의 고향, 주말의 명화'를 보게 된 정희는 이제 어느새 중학생이 된다. 정희 남녀공학인 시골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1학년은 A.B.C.D. 를 배우고 발음기호를 암기하고 신입생 적응기는 빠르게 흘렀고 2학년이 되자 반장이 되어 임원회의에도 나가고 학생 활동을 시작했다. 뽀얗고 보조개까지 파인 정희는 남학생들의 눈길을 줄곧 받았다. 시선이 느껴지기라도 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교무실에 출입을 하거나 복도를 다닐 때에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반장을 맡으면서 성격이 바뀌고 소극적인 아이가 활달한 아이로 변해갔다. 아마도 사춘기가 그 무렵 때가 아니었나 싶다.   


 살구꽃 이파리 같은 마음을 흔들어 준 사람이 바로 1년 선배인 영배였다. 전교임원회의에서 영배는 서기를 맡아 교단 끝 칠판에서 회의 진행을 판서하는 3학년이고 얼굴은 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하기까지 했다. 눈은 외까풀에 듬성듬성 여드름이 돋아났지만 차분해 보이는 얼굴, 글씨체가 너무 정결하고 반듯했고 까만 동복 교복 속에 하얀 목티가 어린 아기의 갓 돋아나는 배냇니처럼 하얗게 보였다.



    

4월 어느 날 체육대회가 있어 반 임원들은 체육대회 때 필요한 피켓을 만들려고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어떻게 써야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써줄까?”

하는 남자 목소리에 올려다보니 선도라고 쓴 완장을 두른 영배선배였다.

'어랏 이 사람은 그 서기 선배?'

복도를 지나가며 남아있는 학생들을 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님이 해주시면 저희는 너무 좋죠!!”

영배는 2의 3이라는 글씨를 눈에 확 띄게 큼직하게 써주었다. 누가보아도 정희 반 푯말이 젤 멋져 보였다.

그래서 둘이는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누었고 며칠 뒤 결전의 전교 반대항 체육대회가 열렸다.

어디선가에서 시선이 느껴졌고 돌아보면 영배는 정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정희마음은 풍선을 탄 것처럼 두둥실 떠다녔다. 가슴이 두근두근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둘이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일까?

  

정희는 그날 체육대회를 마치고 교실에서 그날 썼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피켓을 학교 창고로 두러 가는데 영배선배와 마주쳤다 영배는 무언가를 쑥 내밀었는데 2번 접혀 바지 호주머니에서 꺼낸 겉봉투가 살짝 구겨진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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